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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할머니의 8·15(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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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할머니의 8·15(사설)

입력
1997.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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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할머니도 오늘 고국에서 8·15광복절을 맞는다. 정말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한편으론 꿈에 그리던 고국땅을 밟은 감격이 더욱 새로워질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반세기란 세월속에 파묻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그만큼 더 절실해질 것이다.이는 전쟁이 끝난지 52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훈할머니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13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가진 수요집회에 참석, 일본의 만행을 몸으로 규탄한 훈할머니의 찌든 모습은 지난날 쓰라린 아픔을 겪은 우리 민족의 모습 그대로였다.

「20∼30년전에 일본의 사죄가 이뤄졌어야 했는데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뉘우칠 줄 몰라 화가 난다」는 한맺힌 할머니의 말은 차라리 처연하기까지 하고 지금까지 일본군 군대위안부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소극적인 자세를 되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반세기동안 지고 온 전쟁의 멍에가 얼마나 무겁고 아팠으면 그처럼 찌들고 한이 서렸겠는가. 그의 한은 바로 우리 민족의 한일 터인데 그동안 우리는 군대위안부들의 아픔을 달래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자문자답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가 있을 때만 잠깐 목청을 높인 것이 고작이었다.

이는 전후처리에 대한 우리들의 기본자세가 어떠했는가를 말해 준다. 일본은 미지근한 자세의 틈새를 비집고 그들의 만행을 반성 사과하기는커녕 날로 오만해지고 있다. 이젠 반세기동안 다져온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키워 영향력을 주변으로 확대해 가고 있어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군대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자세는 오늘의 일본을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대위안부문제는 유엔인권위원회 등 국제사회가 일본정부의 법적책임이행과 사죄, 책임자처벌 등을 권고하고 있는데도 일본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민간보상으로 대신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이란 묘한 기구를 만들어 생활고에 지친 군대위안부들을 은밀히 돈으로 회유하고 있다. 요즘엔 일본에 몰아치고 있는 우익바람을 타고 교과서의 군대위안부기술내용까지 삭제하려 혈안이 돼 있다. 앞으로 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것이 확실하다.

귀국 2주일이 다되도록 훈할머니는 아직 가족도, 고향도 찾지 못하고 있다. 자칫 전쟁의 멍에를 그대로 지니고 캄보디아로 돌아가야 할 판이다. 광복절을 맞았다고 하지만 할머니에겐 진정한 광복의 날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전국민이 군대위안부문제 해결 등 전후처리를 말끔히 할 때 할머니는 진정한 광복의 날을 맞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군대위안부문제 등에 대해 좀더 끈기와 열정을 갖고 매달려 매듭지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날로 오만함을 더해 가는 일본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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