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군의 급성장엔 린드 ‘과일요법’이 큰몫괴혈병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그러나 인류사에 뚜렷이 모습을 나타낸 것은 유럽인들이 대항해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1499년 바스코 다가마가 희망봉에 이르렀을 때 원정대원 가운데 절반이상이 괴혈병에 시달렸다. 희망봉이라는 이름에는 괴혈병에서 해방되고 싶은 선원들의 간절한 희망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 무려 400년 가까이 괴혈병은 장거리 항해의 가장 두려운 적이었다.
20세기 들어 괴혈병의 정체가 과학적으로 분명히 밝혀지기 전에 이미 괴혈병에 대한 치료법과 예방법이 발견됐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해군군의관 제임스 린드는 자신의 항해 경험을 통해 신선한 과일이나 레몬주스가 괴혈병의 치료와 예방에 뚜렷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린드는 이같은 내용을 종합해 1753년 「괴혈병에 관하여」라는 소책자를 펴냈다. 린드의 혜택을 본 사람이 적지 않았으나 가장 유명한 것은 남태평양 일대를 탐험한 쿠크 선장의 항해대였다. 쿠크 선장은 1772년부터 3년에 걸친 원정에서 린드의 처방을 약간 변형해 사용했다. 그 결과 아무도 괴혈병에 걸리지 않았다. 18세기말과 19세기초 영국 해군이 나폴레옹 군대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도 괴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회는 1844년 민간인 상선에도 라임주스를 상비토록 하는 법령을 통과시켜 괴혈병 퇴치에 진전을 보게 됐다. 영국 해군이 세계 무적을 자랑하고 상선대가 오대양을 휘젓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린드의 발견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의사학>황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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