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에 찬 시장논리로 인간적 가치 붕괴시킨 신자유주의에 대한 유럽정신 대각성 담겨91년 유럽 유일의 단독 좌파정부였던 스웨덴 사민당의 실각을 마지막으로 유럽에서 좌파정치는 종말을 고하는 듯 하였다. 당시 보수당과 백중세를 이루었던 영국 노동당의 총선 참패가 좌파정치의 종식을 확인해 주었다. 그런데 6년만에 유럽 민중은 좌파를 정치권에 복귀시켰다. 지난 5월과 6월의 총선에서 영국과 프랑스 국민들은 우파정권의 자만감에 찬 시장논리를 버리고 노동당과 사회당 연합의 진취적 약속을 선택하였다. 현재 유럽연합 15개국중 8개국에서 사회당 단독정부 내지 연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좌파가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를 합하면 13개국에 달한다. 유럽에서 좌파정치가 부활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6월 유럽사회당정상회의에서 포르투갈 총리인 구테레스가 선언한 것처럼 「좌파가 전 유럽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인가? 우파의 신자유주의적 국가운영 논리에 반기를 든 저항의 목소리는 무엇인가?
프랑스 사회학자인 알랭 투렌 교수는 그것을 신자유주의가 파괴한 사회를 재건하려는 유권자들의 반란으로 설명하였다. 80년대 초반 이후 맹위를 떨쳤던 신자유주의는 금세기 동안 어렵게 쌓아왔던 협력과 연대의 지혜를 망가뜨리고 봉급생활자들의 안정과 신뢰를 여지없이 파괴하였다는 것이다. 시장경쟁 이념으로 무장된 신자유주의가 경제회복에 기여했음은 분명하지만 도덕 윤리 상호존중의 인간적 가치가 도처에서 붕괴되는 현실은 더 참아내기 어렵다는 반성이다. 이른바 「공급혁명」경제학에 기초한 신자유주의는 레이건과 대처시대의 번영을 거쳐 적자와 침체에 시달려온 케인스적 복지국가의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를 굳히는 듯 하였다. 복지삭감, 임금동결, 국영기업의 대량매각, 긴축, 노조탄압, 경량정부 등으로 이어진 신자유주의적 운영원리는 케인스주의가 창출하였던 수요관리를 위한 각종 제도들을 폐기하면서 시장의 유연성을 복원시키는 데에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시장의 고질적 병폐들이 유연성 회복과 함께 돌아온 것이다. 유럽인들은 공급혁명에 의하여 대중의 생활이 오히려 피폐해졌다고 느끼고 있다. 이기주의 범죄 부정부패 등의 사회문제가 증폭되면서 도덕사회를 지향하여왔던 유럽 특유의 자존심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평균 10%를 상회하는 실업률과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재정적자는 우파정권 지배이념의 적실성에 격타를 가하였고 임금동결과 복지삭감으로 구매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여전히 강행되는 긴축정책 때문에 중산층은 이제 인내력의 한계에 봉착하였다. 그리하여 유럽인들은 우파로부터 등을 돌려 좌파정권에 「새로운 유럽」을 선사해주기를 요구한 것이다. 좌파연합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 사회당 연합의 조스팽 당수가 강조한 「진보와 변화」에의 약속에는 시장에서 국가로의 복귀를 시도한다는 대전환의 의미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성장」을 통하여 도덕사회를 회복하겠다는 유럽정신의 대각성이 서려있다. 그렇다고 좌파정권이 기존의 좌익이념이나 마르크스적 혁명론을 다시 손질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소비자주권시대를 재창출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우파정권에서 방치되었던 여성 환경 생태 불평등 인권 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세계화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신정치를 구현하겠다는 것이 좌파정권의 각오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좌우파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우파보수주의 말고는 아무런 경쟁적 대안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의 경우에 좌우파 구분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것이 대선경쟁에 나선 정당들이 우파쪽에 오글오글 모이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그러면서도 유권자들은 후보들간에 정책차이가 없다고 투덜대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인다. 전통적인 좌우익 구분은 쓸모없게 되었지만 좌우파 구분은 항상 유용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선후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는 그 실행방법과 지향목표를 기준으로 하면 질적으로 다른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시장경쟁은 약한 자에게는 냉혹하며, 민주주의는 다수의 횡포를 동반한다. 개발과 환경, 성장과 분배, 효율과 정의, 강자와 약자 등의 대립적 항목중 어느 쪽이 더 시급하며 어느 쪽에 정책적 비중을 둘 것인가에 대한 차별성이 없는한 한국의 대선은 정치권만의 잔치에 불과할 것이다. 유럽에서의 좌파정치 부활은 유연성과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온 우리의 이념적 풍토에 일대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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