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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몰래카메라/이진희(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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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몰래카메라/이진희(특파원 리포트)

입력
1997.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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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급 고위인사가 마피아의 은신처로 보이는 「바냐」(러시아식 사우나)에서 벌거벗은 미녀들과 함께 있었다는 게 폭로된다면? 권력층과 마피아간의 결탁이 공공연하고 바냐에서 여자들과 함께 술마시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러시아라지만 그 사람의 관운은 그 순간 끝장날 것이다. 바냐의 천정에 숨겨져 있던 「몰래 카메라」에 찍히는 바람에 「섹스와 마피아 스캔들」에 휩쓸려 6월말 옷을 벗은 발렌틴 코발로프 전 러시아 법무장관이 그랬다.비단 코발로프만이 아니다. 러시아 권력층은 누구라고 할 것없이 모두 한두개의 스캔들에 휩싸인 경험을 갖고 있다.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50억달러 축재설에, 아나톨리 추바이스 제1부총리는 96년 6·16대선 당시 사용하다 남은 선거자금으로 추정되는 현금 50만달러의 반출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다. 사건 무마를 위한 외부와의 전화통화마저 폭로됐다.

이달 초에는 러시아 정계의 「떠오르는 별」 보리스 넴초프 제1부총리가 공직자 재산공개에 관한 대통령포고령 발표를 앞두고 중요 정보를 유출하고 사익을 챙겼다는 「독직설」에 걸려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코발로프 장관만이 관직에서 물러난 것은 몰래 카메라에 포착된 생생한 화면이 국민에게 공개됐기 때문이다. 사안자체의 중요성보다는 대국민 이미지가 더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몰래 카메라는 위력적이다. 몰래 카메라는 원래 유럽일대에서 유명인사의 스캔들을 쫓는 직업사진사인 「파파라치」의 전매특허였다. 그들의 렌즈에는 영국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불륜장면이, 스테파니 공주의 토플리스 차림이 생생하게 잡혔다.

얼마전 서울의 한 유명백화점과 대학교 여자 화장실, 그리고 병원의 탈의실에서 발견돼 물의를 일으킨 몰래 카메라는 러시아나 서구의 그것과는 격이 다르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공산국가의 억압체제를 비난할 때 인용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이 몰래 카메라의 천국으로 보이는 한국을 이야기할 때 쓰이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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