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벌들은 자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개발독재의 비호 속에서 의도적으로 육성된 것이다. 한국의 재벌들은 개발독재의 적자들이었다. 그들은 독재의 적자로 태어나서 경제의 적자로 성장하였다. 개발독재의 원조는 그 자전적 선언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우선 경제개혁을 촉진할 백만장자들을 만들어 내기를 원했고 그들이 민족자본주의를 조장해 줄 것을 희망했다』정책적으로 백만장자의 적자들을 만들어 내고, 이들로 하여금 한국경제의 속성을 주도하도록 받쳐준 개발독재의 마키아벨리스트들은 확실히 「유능」했다.
그러나 그들은 「부패」했다. 정경이 유착하였기 때문이었다.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백만장자들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으로 대상하는 대신에 그들로부터 체제유지비를 받아내는 것이 정경유착의 알고리즘(산술법)이었다. 이 정경유착의 알고리즘안에서 중소기업은 경제적 서자였다.
혼합경제가 가미된 시장경제에서의 이상적인 정부는 첫째로 유능해야 하고 둘째로 청렴해야 한다. 초기의 개발독재정권은 첫째 조건을 충족시켰으나 둘째 조건은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즉 그들은 유능했으나 부패하였다. 최선의 정부는 유능하고 청렴한 정부이다. 차선의 정부는 유능하나 부패한 정부이다. 제1대 개발독재정권이 이에 해당한다. 차악의 정부는 무능하나 청렴한 정부이다. 최악의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이다. 현재의 정부는 이중 어디에 자리매김되는 것으로 평가될까.
차선의 정권이었던 개발독재정권의 유산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현 정권 밑에서 지금 우리의 재벌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나.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한계재벌은 무너져 내렸거나 부도방지협약에 걸려 있고 일부 재벌들은 여전히 부도설의 풍랑을 타고 있다. 재벌의 신화가 그 외곽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면 우리의 재벌들은 현재의 경제난을 돌파해 내는 주체가 될 수 있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기업성장의 순리보다는 정경유착의 편법에 더 익숙해지면서 관료조직으로 석화된 재벌의 양적인 성장으로는 오늘날의 경제난을 돌파해 내기가 어려울 것 같다. 정보화가 핵을 이루는 후기 산업사회의 기업성장은 오로지 혁신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거대기업들은 부패의 온상에서 자란 기업관료조직이어서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유연성과 기민성을 이미 잃어버렸다. 오히려 정보화경제가 만들어 내는 소규모의 경제가 거대기업의 실속을 재촉하고 있을 따름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후기 산업사회에서 거대기업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분사화하고 소규모화 하는 길이다. 우리는 아마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한보나 삼미처럼 경제의 전면에서 사라지는 몇개의 재벌을 또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경제성장의 활로는 개발독재의 서자였으며 현 정권의 기아인 중소기업이 열게 될 것이다. 중소기업이 경제의 당당한 주도세력이 될 때에만 한국경제는 재도약의 디딤돌 위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우리의 경제난은 기본적으로는 구조적이다. 그리고 구조적인 문제는 구조적인 해법으로 풀어야 한다.
구조적으로 푼다는 것은 산업구조의 재구축을 의미하며, 산업구조의 재구축이란 혁신적인 중소기업이 산업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마 신세대 기업인을 중심으로 하는 일군의 벤처기업가(창업투자가)들이 혁신적인 중소기업군의 향도역할을 하게될 것이다. 이 말은 벤처기업들만이 한국경제의 활로를 열 수 있고 또 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선의 정부였던 유능하고 부패한 정부의 주도 밑에서 재벌들은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의 유산일 뿐이다.
이제 우리가 바라는 정부는 유능하고 청렴한 최선의 정부이다. 이 최선의 정부가 혁신적인 중소기업의 발흥을 북돋워 주어야 한다. 그러할 때, 대에서 소로 변환하고 있는 정보화경제의 필연적인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가 중소기업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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