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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의 소설은 시보다 강하다/‘산타페로 가는 사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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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의 소설은 시보다 강하다/‘산타페로 가는 사람’ 출간

입력
1997.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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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연인·언어의 테러리스트·초현실주의 무당…/원초적 여성성의 희구 사회의식의 적극적 표출/“이국적 정열 어우러진 여작가의 힘찬 산문적 근육”시인 김승희(45)씨의 이름 앞에는 늘 많은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불의 연인」 「언어의 테러리스트」에서 「초현실주의 무당」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는 자신의 문학적 탐색과정을 「광기의 마녀적 탕진」이라 이르기도 했다.

73년 등단해 이처럼 피가 튀는듯한 언어들로 6권의 시집을 낸 김씨가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을 냈다. 시인으로 활동한 지 20년이 지난 94년 그는 익명으로 일간지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산타페로 …」를 응모해 당선됐고, 이 책은 그 이후 써 온 소설들을 모은 첫 작품집이다.

「당연과 물론의 세계를 거부하는 야한 독립꾼」이라는 어느 평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소설은 시보다 오히려 강렬하다. 김씨는 막상 『소설이라는 걸 쓸 줄 모르기 때문에 내 방식대로 썼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냥 써보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요즘 흔한 여느 페미니즘의 주창자들과는 차별되는 원초적 여성성의 희구, 뚜렷한 사회의식의 적극적 표출, 외국체험에서 비롯된 이국적 정열이 어우러진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흔치 않게 즐거운 지적 탐험의 길이기도 하다.

「호랑이 젖꼭지」라는 소설에서 여주인공은 외국에서 온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탈상 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중국의 장쩌민(강택민) 주석이 한국대통령에게 선물한 백두산 호랑이 한 쌍을 보러간다. 막상 그들은 비실비실 낮잠 자는 꼬마 호랑이 한 쌍에 실망하고, 공원에서 틀어놓은 녹음된 호랑이의 포효에 기막혀 하지만 김씨가 드러내려 하는 것은 그 줄거리가 아니다. 백두산 호랑이를 찾아가는 마음 그것은 무엇일까. 「호랑이 젖꼭지」는 김씨가 썼던 시이기도 하다. 답은 거기에 있다. 「지금 나에게 소망이 있다면/ 악마의 젖꼭지를 만나 주린 젖을 흠뻑 먹고 싶구나/ 단군신화에서 쫓겨난 어머니 호랑이/ 이글이글 털투성이 젖가슴에 얼굴을 비비고」. 「쑥과 마늘을 먹고 어디까지나 운명의 동굴을 지키는 웅녀」 같은 그들 어머니의 실존의 그늘을 벗어나 야성의 모유를 흠뻑 수유해 『자주 포효하라!』는 것이 김씨의 메시지다.

「회색고래 바다여행」에서 작가는 일간지 문학담당 여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국문학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을 비판한다. 「어서 빨리 역사니 민중이니 항쟁이니 구질구질한 것에서 탈출해서 좀 고급하게 포스트모던해지자고 누군가 결정을 한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 문화, 어서 이 터널만 빠져나가고 보자는 「터널 비전」과 서로서로 냄새를 풍기며 그 악취가 빠져나갈 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미워하는 「버선목 안의 삶」같은 사회를 김씨는 시인의 감성이 담긴 방식으로, 맹렬하면서도 세련되게 비난한다.

평론가 임규찬씨는 『기를 느끼게 해 주는 힘있는 소설!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여성작가의 힘찬 산문적 근육이 참으로 반갑다』고 말하고 있다.

서강대 영문과와 대학원 국문과를 나온 김씨는 『그곳은 아직 히피의 기운이 남아 있는 이상한 도시』라는 미국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 동아시아어과에서 올해말까지 2년반 동안 한국문학과 한국어 강독을 가르친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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