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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포트와 로베스피에르/류동희 전국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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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포트와 로베스피에르/류동희 전국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7.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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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개된 사진속의 폴포트는 로베스피에르의 최후를 연상시킨다.캄보디아의 폴 포트가 인민 재판정에 끌려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프랑스 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가 체포되던 광경을 그린 정치삽화를 떠올리게 한다. 「테르미도르(혁명력 7월19일∼8월17일)의 반동」이라는 표제의 그 삽화는 로베스피에르가 반대파에 의해 팔이 잡히는 순간을 극화했다. 재판정으로 향하는 폴포트 역시 양 옆구리가 반란세력의 군인들에게 잡혀있다.

몰락의 원인도 유사하다. 로베스피에르는 친구이자 동지 당통을 처형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폴 포트 역시 그의 동료 손센을 참혹하게 죽임으로써 봉기를 야기했다. 반란은 추종자 자신들에게까지 다가선 죽음의 공포에서 비롯된 본능적인 것이었다. 노선투쟁과 같은 고차원적인 것이 아니다.

둘은 이념의 맹신자였다는 점에서 똑같다. 로베스피에르는 루소의, 폴 포트는 마오쩌둥(모택동)의 광신도였다. 로베스피에르는 소생산자 중심의 사회를 건설하기위해 귀족과 대상공업자, 그리고 대지주가 철저히 배제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폴 포트는 「순결한」농촌공동사회를 건설하기위해 이전의 「불순한」 요소는 모두 제거 되어야한다고 판단했다. 로베스피에르에게 공포정치는 새 국가를 건설하는데 효과적인 제도였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한달 보름사이 재판절차 없이 지도급 인사 1,300명을 처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폴포트에게 있어 「킬링필드」는 새 사회 건설을 위해 불가결한 「청소작업」이었다. 그 결과 200만이 생죽임을 당했다.

역사는 로베스피에르에 대해 애증을 갖는다. 수백년 이어온 앙시앙레짐을 전복시키기위해서는 그같은 「비용」은 불가피했다는 것이 로베스피에르를 위한 「변명」이다. 둘은 모두 이상주의자와 학살자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지녔다. 그러나 농촌공동사회 건설이라는 폴포트의 목표는 로베스피에르의 것과는 달리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그리고 폴포트의 「비용」은 로베스피에르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다. 학살의 기억이 바래질 먼 훗날의 역사도, 그 「비용」때문에 폴 포트에게 일말의 이해조차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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