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의 계절. 비갠 뒤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유유히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보노라면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성큼 다가선 저기 산등성이와 짙은 수목, 그리고 뜨거운 태양…. 여름은 모든 이에게 과거로의 여정을 솟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요즘은 학교가 방학중이라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책도 읽고 화랑가를 둘러보기도 하고 가족과 단란한 저녁시간을 갖는, 나로서는 일년중 가장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는 때이다. 때문에 오전에는 신문기사를 찬찬히 읽기도 하고 저녁에는 TV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는데 그 기사들이 도시의 스모그만큼 답답하여 저절로 눈가가 찌푸러진다. 대기업의 부도사태, 대선주자들의 체신없는 행태, 부실공사로 인한 어처구니 없는 대형사고, 학교폭력 등 수많은 사건·사고가 연일 계속되고 있어 이를 접하는 입맛은 항상 개운치가 않다. 우리의 멋진 미래상, 신소재·신기술의 개발, 부조리한 제도의 획기적인 개선,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훌륭한 인물을 소개하는 그런 기사가 많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몸담고 있는 문화예술계도 크게 예외가 아닌듯 하다. 여기저기 공연은 늘어나고 객석은 점점 비어가고 연주자는 느는데 제 모습을 갖춘 진짜 연주자는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다. 수십년을 피아노를 연주하고 후진을 양성해온 처지에서 책임을 통감하게 된다.
요즘 특히 안타까운 것은 관객을 찾아간다는 미명아래 예술혼을 저버린 흥미위주의 음악회가 양산되는 점이다. 내가 반생을 바쳐온 피아노음처럼 음악은 순수함을 생명으로 한다. 음악은 그 명징한 아름다움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가다듬게 하고 무언가 고귀한 것을 그리게 하는 힘을 지녔다. 요즘 유행하는 댄스뮤직처럼 비주얼한 음악은 순간적으로 감성을 자극하지만 클래식음악은 어지러운 마음을 카타르시스하고 정신을 고양시킨다. 그 클래식무대에 상업성이 개입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 몹시 안타깝다.
문득 이런 모든 것이 우리 사회가 균형감각을 잃어 가는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학창시절에 공부 잘하는 동료를 보면 지능지수(IQ)가 높다하여 IQ가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지능지수는 가르친 것을 잘 기억하고 실무적인 일에 강할수록 높아진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좋은 성적과 높은 지능지수가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성공의 많은 부분이 전혀 다른 요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얼마전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인 대니얼 골먼은 저서 「감성적 기능」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지능개발법으로 감성지수(EQ)의 개발을 제시함으로써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미래사회에서의 성공은 지적 능력 외에 창조력 연상력 취합력과 같은 자신의 감성에 대한 이해력과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능력,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지능과 지혜로 풀이될 수 있는 IQ와 EQ의 조화와 균형, 그것이 한 인간의 사회적 성공을 가늠한다고 하겠다.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적절히 배출할 때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균형감각은 어느 정도일까. 소득수준은 1만달러에 이제 막 접어들었지만 소비수준은 2만달러, 의식수준은 3,000달러라면 지나친 자기비하일까. 일부 계층의 낭비적인 과소비 풍조,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의 부화뇌동형 구매성향이나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하는 문화와 고급 공무원의 월급으로도 모자라는 과외비 등이 현재의 소비수준이다. 반면에 쓰레기 담배꽁초 안버리기 등의 기초질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소득수준에 걸맞는 교양과 예술에 대한 인식은 아직 바닥수준인 것이 솔직히 우리의 현실이다.
결국 이러한 요소들이 균형있게 발전될 때 멋진 미래를 예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몸담고 있는 문화예술계에서도 자신의 영역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순수함을 잃지 않는 동료들과 후배가 많아졌으면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자」―이 말을 우리 모두가 재음미하면서 실천의 덕목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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