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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사고의 속지주의/홍순길 한국항공대 교수(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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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사고의 속지주의/홍순길 한국항공대 교수(전문가 진단)

입력
1997.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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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등록국 조사참여 국제민간협약에 명시/KAL 801사고 규명 ‘초기 한국배제’는 문제8월6일 새벽 1시께 온 국민을 비통에 잠기게 한 KAL 801 사고가 미국령 괌섬의 아가냐 공항 주변에서 발생했다. 항공기 사고조사의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측 조사단의 접근이 제한된채 미국주도로 사고조사가 이루어져 양국 당사자들간에 갈등을 빚는듯한 양상을 보였다. 조속히 사고원인이 규명되어 책임소재가 밝혀져야겠으나 우선 사고의 수습과 제반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1944년 12월7일 미국 시카고에서 체결된 국제민간항공협약, 즉 시카고조약 제1조에 보면 조약당사국은 영역(영토와 영해) 상공에서 완전하고 배타적인 주권을 갖는다고 명시했다. 동 협약 제26조에 따르면 사고발생지의 조약당사국이 사고조사 실시에 있어서 일차적인 권한을 갖되 항공기 등록국은 조사에 참여할 대표를 임명할 권한을 가지며 조사사항 보고 및 소견을 통보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카고조약 부속 13항에는 조사 참가자는 조사책임국가의 통제하에 조사의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이상의 국제항공조약 및 동 부속서 내용에 따라 사고발생지 관할국인 미국이 일차적 조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이를 이유로 항공기 등록국에서 파견한 조사단의 참여를 제한한 것은 문제가 있다. 시카고 조약이나 부속서의 정신은 가능한 속히 전 조사과정에 사고항공기 등록국가의 조사단을 참여시켜 공동으로 협조하는 것이다. 즉 현장조사는 물론, 블랙박스 해석에도 처음부터 등록국 대표가 같이 참여해 보다 신속하고 공정한 조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영토관할국인 미국이 예비조사를 끝낸 후 대기하고 있던 우리 대표단을 뒤늦게 참여시킨 인상을 준다.

한 국가의 항공운송체제는 그 특성으로 인하여 정치 외교 국방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즉 태극기를 단 태극날개의 추락은 대한민국 국가위신의 추락이요, 국제무대에서 국적 항공사의 경쟁력 하락은 곧 국력과 국가이익의 하락을 의미한다. 냉혹한 국제관계의 현실은 국력을 배경으로 국가이익을 최대로 추구하는 것이 철칙이다.

KAL 801 사고원인이 미국측(공항안전시설의 결여, 민간관제사의 불완전한 기능, 항공기제작사의 책임)에 있느냐, 한국측(기체정비결함 또는 조종사 실수)에 있느냐에 따라 국가이익이 크게 좌우됨은 물론이다. 따라서 원인이 복합적이거나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흔하진 않지만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리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83년 9월1일 KAL 007기 피격사건 후 캄차카 연안 깊은 바다속에 가라앉은 블랙박스 수색을 위해 미·소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잠수함 충돌사태 직전에 소련이 이를 획득하여 10여년 이상 보관하고 있었다. 이 사건과 관련, 미국은 유엔이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에서 소련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하여 비난하였고 소련은 미국의 간첩행위에 의한 고의적 영공침범이었다고 역공하면서 10여년 이상을 블랙박스의 심판없는 무승부를 유지해왔다.

소련이 블랙박스에 유리한 내용이 있었어도 공개하지 않았을까? 한·소 수교이후 옐친이 내용이 텅빈 블랙박스를 청와대에 가져와서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일이 있다. 추후에 보내온 것도 녹음상태가 불량하고 지워진 부분도 있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이처럼 각국은 국가이익을 위하여 블랙박스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필요시 공개를 지연시킨 사례가 있다.

지금 KAL 801의 블랙박스는 사고직후 미국이 워싱턴의 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로 옮겨갔으며 한국대표단의 참여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 사고이후 사고원인에 대하여 미국측이 공식 또는 비공식, 직접 또는 간접으로 언급한 내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큰 폭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당초 미국측은 아가냐공항의 착륙유도장치 고장이 문제되지 않았으며 사고당시 기상은 악천후가 아니었고 기체결함의 증거도 없다고 했다. 때문에 관제사나 조종사의 실수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재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관제탑의 경보장치가 고장난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처럼 아주 중요하고 예민한 사안인 사고원인에 대해 확실한 증거없이 예단하거나 추론하는 것은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전통적인 한미 우호관계를 고려할 때 기우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고조사의 모든 과정에 한국대표단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정하고 효율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항공우주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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