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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와 시나리오/배정근 경제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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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와 시나리오/배정근 경제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7.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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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에서나 자주 등장하던 정체불명의 괴문서가 재계에서도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진퇴의 갈림길에 선 기아그룹 김선홍 회장을 헐뜯는 내용의 괴문서가 요즘 언론계와 관가, 채권은행단 주변에서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이 괴문서는 등장시점부터가 심상치 않다. 채권은행단이 『김회장을 비롯한 기아그룹 임원진의 사실상 사표제출이 없이는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내리고 이를 정부가 바로 받아 적극 지지하고 나섬으로써 정부·채권은행단과 기아간에 힘겨루기같은 양상이 빚어지는 와중이다.

내용의 사실여부를 떠나 이 괴문서가 확인시켜주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회장을 비방하고 몰아내려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한단계 더 비약을 한다면 기아를 공중분해하기위한 잘 짜여진 시나리오가 있다는 설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사정당국이 김회장 개인에 대한 조사를 끝내고 이를 퇴진압박용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설과도 무관치않아 보인다.

기아가 오늘날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해서는 재벌오너 못지않게 그룹경영의 전권을 행사해온 김선홍 회장이 마땅히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인책론을 부정하는 이는 별로 없다. 권한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져야하는 것은 어느 조직에서나 당연한 원칙이다.

그러나 김회장의 퇴진이 기아사태 해결의 모든 것인양 매달리면서 중소협력업체의 연쇄부도문제 등 더 시급하고 중대한 일에는 전혀 손을 쓰지않고 있는 정부와 채권은행단의 태도는 앞뒤가 바뀐 것이다. 김회장 거취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과연 그들의 목적이 「기아살리기」인지, 「김선홍 죽이기」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한다. 괴문서는 그러한 불필요한 오해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기아문제는 그 처리향방에 국민과 재계의 눈이 집중돼 있는 예민한 현안이다. 그럴수록 이를 처리하는 과정이 투명하고, 모든 당사자들이 수긍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민간에 의한 자율적인 산업구조 조정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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