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땅에 건물을 짓다가 철거명령을 받고 벌금까지/본인도 모르는새 미군공여지로 묶여 있었던 것이다/67년 발효 SOFA에 따른 미군공여지를 놓고 재산권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해제를 요구하며,또 헐값징발이 억울하니 환매권을 인정하라고…『내 땅에 건물을 지었다가 미군의 반대로 철거명령을 받고 벌금까지 냈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땅이 미군 공여지로 묶여있다는 거예요』
경기 동두천시 광암동 쇠목마을 주민 김병규(42)씨는 지난해 3월 자신의 땅에 건물 신축공사를 하던 중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인근 미군부대 관계자가 찾아와 『이 땅은 미군 공여지이므로 건물을 못짓는다』며 공사 중단을 요구했던 것이다. 김씨는 갑작스런 공여지 운운에 어리둥절했다. 시청에서 농지전용허가를 받은 게 불과 며칠전이었다. 당시 시청 관계자는 공여지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어릴때 미군캠프 확장으로 할아버지때부터 살던 동두천 걸산리에서 가족과 함께 쫓겨났던 김씨는 당시 악몽이 재연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시에 찾아가 자초지종을 따졌다. 그러나 실무자는 『미군 공여지인지 우리도 몰랐다』며 미군과 협의해 보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김씨는 착오가 있었다고 생각, 공사를 계속 진행했다. 그러나 다음날 밤 미군 폐탱크와 크레인 8대가 마을 아래 공터로 실려왔다. 아연실색한 주민들에게 미군은 『98년에 계획된 포사격장을 미리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변 권총 사격장 때문에 안 그래도 통행제한과 소음피해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포사격장이 건설되면 마을 전체가 폐쇄될 수 밖에 없다』며 두달간 격렬하게 항의, 폐탱크를 철수시켰다. 그러나 시당국은 김씨에게 『67년 미군공여지로 지정됐기 때문에 미군동의 없이 건물을 신축할 수 없다』며 건축허가 불허방침을 통보해 왔다. 이미 건물은 완공된 상태였다. 얼마 뒤 철거명령서와 함께 100만원 벌금고지서까지 날아들었다. 자기 땅에 집을 지으려다 범법자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김씨는 자신의 땅이 아무런 보상도, 한마디 통보도 없이 미군 공여지로 넘어간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지난해 7월 정부를 상대로 미군의 토지 사용권 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 법정 투쟁에 나섰다. 『권리를 되찾을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지만 더이상 무기력하게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경기 파주시 진동면 주민들도 비슷한 피해를 입고 있다. 진동면은 83년 「수복지역내 미복구 토지의 복구 등록과 보전등기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주민들이 토지소유권을 되돌려 받은 민통선 지역. 52년 국군에 의해 민통선 이남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이곳 주민들은 70년대 말부터 당국의 허가를 얻어 진동면 일대 농지에 출입영농을 해오다 지난해 4월 정착촌 조성을 허가해 달라고 시당국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관할 군부대측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 지역이 73년 미군 공여지로 지정됐다는 이유에서 였다.
주민들은 『전체 공여지 216만평중 4만평만 미군 포사격장으로 쓰이는 데도 20년이상 전체 농지를 공여지로 묶은 것은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소송을 준비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포사격 피탄지역이라는 이유로 진동면 지역을 전면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포사격장 주변 4만평을 1차 매수지역으로 지정, 협의수용에 나섰다. 주민들은 정착촌 건설은 커녕 토지마저 빼앗길 처지가 돼 버렸다. 진동면민회장 이백형(60)씨는 『45년만에 고향땅에서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미군공여지라는 이유로 다시 쫓겨나게 됐다』며 한탄했다.
강제 징발된 미군 공여지를 둘러싼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파주시 장좌리 주민들은 73년 미군 공여지로 강제 징발된 토지를 돌려달라며 법정투쟁에 나섰다. 당시 평당 590원짜리 채권을 받고 고향땅에서 쫓겨난 이재욱(58)씨는 『장좌리 일대 40만평에는 미군시설도 없고, 80년이후 관할 군부대 허가하에 임대료를 지불하고 농사를 지어 왔다』며 『미군이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땅은 당연히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공여지 해제 및 환매권 분쟁은 동두천과 대구 등지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동두천시 김기훈(59)씨는 74년 헐값에 미군공여지로 징발된 지행동 땅 3,000평이 공여지에서 해제됐으므로 환매권을 인정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대구 동구 배동찬(45)씨는 선친때 보상도 받지 못하고 강제 징발당한 8,000여평에 대한 소유권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공여지 옆에 공장을 지었다가 도산한 기업도 있다. 동두천시 광암동의 가죽코팅 전문업체 국제케미컬사(대표 이신영)는 94년 8월 건축허가를 받아 미군 사격장 탄약고에서 300여m 떨어진 언덕에 공장을 세웠다. 그러나 건물이 완공될 무렵 미군측에서 항의가 들어왔고 95년 3월 철거 명령서가 날아 들었다. 탄약고와 너무 가깝고 미군 부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라는 게 이유였다. 회사측은 1년간 미군과 국방부를 설득, 『미군이 요구하면 언제라도 공장가동을 중단하고 철거하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공사를 속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간의 공사 중단과 생산 차질, 바이어와의 계약 파기, 기술자들의 이직 등으로 올초 결국 도산했다.
동두천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미군의 한국 주둔 필요성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미군 공여지로 인해 주민의 재산권에 피해가 생기는 것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느냐』고 말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미완의 다리 동작대교/북쪽끝 미군기지에 막혀 제구실 못한지 14년/공여지 많은 동두천은 도시계획이 불가능
지난 84년 개통된 동작대교. 서울 동작구 동작동과 용산구 이촌동을 잇는 한강의 14번째 다리. 공사기간 6년, 공사비 554억원, 교량폭 40m…. 당시 각 부문 최고를 자랑했던 동작대교는 개통 14년이 됐지만 용산 미군기지로 인해 아직 「미완의 다리」다. 동작대교는 개통 당시 하루 6만여대의 차량을 소화하면서 도심진입 시간을 5∼10분 이상 앞당길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완공 후 교통량은 당초 예상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당시 교통량은 하루 15,000여대, 통행량이 가장 많았던 제3한강교(한남대교) 15만대의 10분 1, 가장 적었던 제2한강교(성산대교)의 4만대에 비해서도 절반이 안되는 수준이었다. 현재 교통량도 부근 교량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동작대교는 기본설계 단계에서는 용산 미8군기지를 관통하여 후암동 길을 통해 도심과 직결되게끔 돼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주한미군 당국의 「승낙」을 얻지 못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이촌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용산 기지를 통과하지 못해 강북 도심으로 직결되는 도로망은 커녕 강변도로와 연결되는 인터체인지도 확보하지 못한 불구의 다리로 남게됐다.
경기 동두천시는 시 곳곳에 산재한 공유지 때문에 아예 도시계획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시 면적의 50%가 넘는 1,835만3,000평의 공여지를 피해 각종 도시시설이 들어서면서 도시 전체가 남북으로만 길쭉하게 발전했다. 특히 동두천 시내를 통과하는 서울―연천간 3번 국도의 기형적 모습은 공여지로 인한 동두천시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수년전부터 시가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3번 국도 동두천―전곡 구간 도로확장공사는 현재 미군 캠프 캐슬 정문앞 부분만 남겨둔 채 공사가 반 마무리된 상태. 전체 구간은 이미 4차선으로 확장을 끝냈으나 2차선으로 좁아지는 정문앞은 손을 못대는 바람에 출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극심한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미군측에서 공여지를 해제하는 조건으로 요구한 12억원에 대해 시에서는 승낙했으나 국방부측의 반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근거도 없는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는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 4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들인 시의 숙원사업이 고작 몇백평의 공여지로 인해 어려움에 놓여 있다.<황동일 기자>황동일>
◎미군 공여지 현황/96곳에 8,028만평/전용지역만 시가 10조원
미군 공여지는 67년 발효된 한미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따라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에게 사용권을 공여한 땅을 말한다. 국방부가 96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군 공여지 총 면적은 96개소 8,028만평.
공여지는 크게 전용지역, 지역권지역, 임시지역으로 나뉜다. 전용지역은 미군이 배타적 사용권을 가진 땅으로 미군기지, 훈련장, 기타시설 등으로 쓰이며 총 4,200만평이다. 지역권지역은 사격훈련장 안전지대, 송유관, 수도관등의 보호를 위해 확보한 지역으로 1,000만평에 이른다. 2,800만평 정도인 임시지역은 군사훈련을 위해 임시로 사용하는 땅이다.
단일지역으로는 파주·문산지역이 2,830만평으로 가장 많고 동두천이 1,835만평으로 두번째다. 서울에는 용산기지 85만평 등 105만평이 있다.
국방부는 이 자료에서 전용지역 4,200만평은 시가로 10조원을 넘고 이를 임대료(토지가액의 10%)로 환산할 경우 연간 1조3,352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10년간 무상으로 사용할 경우 임대료만 10조원이라는 얘기가 된다.
공여지중 미군이 보상없이 사용하는 전체 사유지는 총 2,428만평으로 시가로 3,088억원에 이른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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