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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벗고 구동독이 일어선다/통독 7년 현지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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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벗고 구동독이 일어선다/통독 7년 현지르포

입력
1997.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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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고속도 등 SOC 확충·신설/생산능력 구서독의 80%수준 육박/지금까지 총 462조원 투입통일 독일의 구동독지역 복구작업은 치밀하고도 신속하다. 공산독재 40년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40년이 걸려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으나 통독 과정은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일화 논설위원 겸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독일정부의 초청으로 동독지역 복구의 현장을 돌아봤다.<편집자 주>

동서독을 영원히 갈라 놓을 것 같이 버티고 서있던 베를린 장벽은 언제 그런 것이 있었느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통독을 기념하기 위해 죄다 뜯어가 버리고 한 쪽 귀퉁이에 역사 보존물로 얼마만 남아 있다. 장벽이 걷힌 베를린 중앙부의 넓은 공간에는 총리청을 비롯한 관가와 외교가가 들어선다. 30만 데모군중이 모여 자유를 절규하던 구동독의 라이프치히 역광장도 보수공사를 하느라 온통 버팀목을 세우고 덮개를 씌우고 야단이다. 역중심부에 거대한 상가를 세울 계획을 갖고 건물외모만 그대로 둔채 내부는 완전히 뜯어내고 있다.

1949년 정권수립이후 동독정권은 매년 10%의 경제성장을 했다고 발표해 왔다. 90년 10월 통일이 이뤄진 후 내막을 들여다 봤을 때 이는 엄청난 과장으로 밝혀졌다. 경제는 파산에 가까운 밑바닥 수준인데다 환경오염은 극심했고 기업 생산력은 서독의 40%가 채 안되는 「고선전 저효율」사회라는 것이 밝혀졌다.

통독정부는 구동독 재건을 위해 92년부터 연 1,500억마르크 이상 투자했다. 지금까지 총 규모는 9,200억마르크(462조5,000억원)에 달한다. 투자는 현재 서독측 국민이 부담하는 통독개발비(수입의 7.5%)가 폐지되지 않는 한 계속된다. 10년을 갈 수도 있고 20년을 갈 수도 있고 어쩌면 1세대를 갈 수도 있다. 세금을 내는 측이야 어쨌든 구동독은 이 막대한 마르크를 갖고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기업과 대학을 개혁해 벌써 상당한 경쟁사회로 키워졌다. 오데르강쪽의 폴란드 접경 마을인 비스코우시의 문화관장이자 동독권에서 명성을 키워온 작가인 볼프강 브라이언씨에 따르면 서독사람들이 동독지역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철도의 속도를 높이는 일이었다고 한다. 기존 철로는 이음새가 30㎜쯤 떨어져 있으면서 여름과 겨울철의 기온에 적응하도록 돼 있었는데 통일이 되자 이음새를 마그네슘 합금으로 용접해 기차의 덜컹거림을 없애 속도를 단번에 시속 60㎞에서 80㎞로 올렸다. 동독 전역의 전화선은 서독에도 아직 완성돼 있지 않은 광케이블로 깔았으며 새로 놓는 고속도로는 서독의 아우토반보다 훨씬 진전된 기술과 재료로 건설하고 있다. 수리를 하지 않아 폐허가 되다시피한 교회 극장 관공서 등 공공건물들마다 수리원들이 크레인 받침대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며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대리석을 씻어내느라 분주하다. 40년 정체를 7년만에 거의 다 쓸어내고 있는 것이다.

연 1,500억마르크가 들어가는 광대한 동독복구계획은 서독인들에게는 많은 경제적 부담을 줬지만 동독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심리적 부담을 줬다. 많은 동독인들이 통독과정에서 고향을 떠났다. 정치 경제 문화 체육 등의 구엘리트들이 동독 패망으로 자리를 잃거나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해 고향을 등졌고 젊은이들은 화려한 도시 불빛이 있는 서독으로 대거 떠나버렸다. 통독당시 동독은 이미 노인과 무능력자만 남겨진 텅 빈 사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통일작업은 미리 잘 계획된 스케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정대로 잘 진행돼 왔다. 사회간접자본도 복구되고 사람도 제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북새통속에서도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서독정부는 동독정부로 하여금 공정한 선거에 의해 결성된 정부의 합법적 절차를 통한 통합결의를 하게 했다. 콜 총리는 이웃나라들인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에 달려가 통일이 되더라도 절대로 현 국경을 변경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통일 지원약속을 얻어냈다. 소련 프랑스 영국 미국 등 4대 점령국에 대해서는 동서독과 미영불소의 이른바 「2+4」조약 체결을 위해 독일의 영구평화와 경제지원의 조건을 갖고 한 나라를 5번이상 방문해 결국 이들 4대점령세력 모두가 통독을 지지하는데 서명을 하게 됐던 것이다.

통일이 된지 7년. 서독인들은 통일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통독을 후회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에 의해 점령당한 기분이라는 불평을 하는 이가 더러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통일 축복이 행여 흐트러질까봐 우려하는 엄살이거나 양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침략국으로서의 겸양 제스처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통독계획은 원안 그대로 진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92년이래 줄곧 경제성장 2%선을 달성하고 있으며 동독 경제는 벌써 서독경제생산능력의 80%수준을 회복했다. 동독지역 엘리트들은 『우리는 기초과학이 강하다. 부족한 것은 컴퓨터기술이었는데 지난 3∼4년간에 많이 따라잡았다』고 말하고 있다. 플라스틱 용접공학같은 분야는 서독에 앞서 있다. 중소기업정책도 매우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독일인들은 벌써 통일독일의 평화를 말하기보다는 통일유럽의 평화를 말하고 독일경제를 말하기보다는 통일유럽의 경제를 말한다. 독일이 통합 유럽에서 차지할 역할은 온 중앙으로 옮겨졌다. 중심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통일은 독일인에게 확실히 새로운 지평을 열게 했다.

◎리프스토프 구동독 인민농장/농민 71명이 인수 영농과학화로 성공

독일은 통일이후 원칙적으로 사유재산이 없던 동독의 기업,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신탁청(트로이한트 안슈탈트·Treuhand Anstalt)을 설치했다. 신탁청은 동독내 모든 국유재산을 인수받아 기업 건물 토지 등에 대해 명목상의 돈을 받거나 시가를 받고 불하하는 절차를 시작했다.

기업은 관리직 또는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은행빚을 얻어 인수하기도 하고 건물, 토지 등은 과거 연고권자 또는 관련자가 적절한 절차를 거쳐 불하해 갔다. 식당 여행사 소규모공장 등 중소기업 1만5,000개가 단번에 사유화했다. 이 가운데 20%가 이미 파산했거나 해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약한 경쟁력과 부족한 자본이 주요인이다.

동독 최북단주 메클렌부르크의 주도 슈베린에서도 자동차로 2시간쯤 달려야 나타나는 리프스토프(Luebstorf)농장은 구체제의 장애를 극복한 동독 기업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곳중 하나이다. 과거 인민농장이던 리프스토프의 농민 71명은 동독 패망 후 슈베린성주 프리드리히 대공가가 3대째로 소유해온 농장부지 4,700㏊를 인수했다. 이들은 광대한 농지에 보리 밀 유채화 사탕무 등을 심고 젖소, 양, 돼지 등 가축 1,20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농장의 한스 슈본베크(48) 부지배인은 농장에 비치된 240마력짜리 트랙터 6대를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동독주둔 구소련군이 철수하며 헐값에 넘긴 중장거리미사일 궤도차량을 개조한 것이다. 이 트랙터를 이용해 밭가는 일, 돼지 우리 청소, 작물 수확 등 거의 모든 일을 한다. 또 스위스에서 새 농법을 배워 오고 유럽수준을 능가하는 우유가공법을 개발하여 지금은 조합원 71명 개개인이 1주일정도 괜찮은 여름휴가를 보낼 정도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수익성이 증대하자 이웃 폴란드로부터 농장 위탁경영 제의도 들어왔다. 통독이후 연고권을 찾아 가끔 작은 농장을 사유화한 곳도 있으나 이런 곳은 유럽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 밀려 죽어가는 형편이고 대형농장 그대로를 인수받아 재빨리 과학화한 곳만 살아 남았다.<베를린에서=정일화 논설위원 겸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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