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기로 시작해 시루떡으로 끝나는 한국인의 일생’/단자·주악·편등 100여종 상세한 요리법에서 사회학적 의미까지 소개한국 사람의 일생은 떡으로 시작해 떡으로 끝난다. 아기가 태어나 삼칠일을 넘기면 속된 기운으로부터 아기를 보호한다는 의미로 백설기를 쪄 가족끼리만 나누어 먹었다. 이어 백일부터 10세 될 때까지는 생일마다 붉은 색의 찰수수 경단을 해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나이가 차 결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달떡과 색떡을 해 기쁨을 나누었고, 회갑상에도 온갖 편이 빠지지 않았다. 사후에도 떡과의 인연은 끊이지 않는다. 제상에도 시루떡 진설은 빼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도 옛 말. 지천으로 깔려있는 화려한 케익과 과자들이 떡을 밀쳐내고 최고의 간식거리가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강인희(78) 명지대 가정학과 명예교수가 4년여의 공을 들여 세상에 내놓은 「한국의 떡과 과줄」(대한교과서 발행)은 노학자의 손맛이 담뿍 배어 있는 맛깔스런 책이다. 각종 단자, 주악, 편 등 100여종에 이르는 떡이 백과사전식으로 정리됐다. 또 전통 과자류를 일컫는 총칭인 과줄 부분 역시 바삭한 강정, 깔끔한 다식, 기름에 지지는 유밀과, 과일로 맛을 낸 과편 등이 상세히 소개되는데 화려한 색감이 여느 양과자에 뒤지지 않는다.
요리법이 상세히 나와 있다고 해서 그저 떡 요리책 정도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신라 남해왕 사후 왕위를 두고 서로 양보를 하다 결국 떡을 깨물어 보고 치아수가 많은 이가 왕위에 올랐다는 삼국사기 기사부터 시작해 문헌과 유적에 나타난 떡의 역사와 지방 떡의 특색, 문화사회학적 의미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강교수는 『떡 만드는 일을 부담스럽지 않게 느끼도록 분량을 1되, 1컵 내외로 조금씩 적어 놓았지만 못내 아쉽다. 떡은 원래 알콩달콩 제 식구끼리만 먹는게 아니라 한 시루 그득 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게 제 맛』이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떡은 제 곳간 비는 줄 모르고 무작정 퍼주기 좋아하는 우리네 옛 인심의 상징물같다.
강교수는 또 『떡은 다양한 곡물로 만들 수 있고, 섬유질이 많아 건강식 측면에서 빵보다 우수하다. 일본이나 중국 등 쌀을 먹는 다른 민족에게 종주국으로서의 명예를 빼앗길 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일본의 「기무치」 꼴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노학자의 소망은 젊은 엄마들이 아이 생일에 떡 한가지쯤 직접 만들어 주는 일과 기업체가 나서서 빨리 케익이나 과자 처럼 산업화에 나서는 일이다. 떡은 그냥 잊혀져도 좋을 그런 만만한 먹을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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