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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는 담쌓은 여성들/영화감독 박철수(남자가 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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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는 담쌓은 여성들/영화감독 박철수(남자가 본 여자)

입력
1997.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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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안개기둥」 「물위를 걷는 여자」 「301·302」 「산부인과」내 영화 주인공이 대부분 여성이다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여성영화감독이란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때마다 「페미니즘영화」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닌가요』라고 동지적인 친근함을 보이는 여성들의 질문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곤혹스럽다』였다.

나는 페미니즘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여성영화감독」이라 규정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단지 나는 모든 영화에서 약자의 편에 서야한다는 생각을 견지해왔고 남성권력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영화를 만들어왔을 뿐이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때마다 여성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다. 아무리 해도 나는 남자이니까.

그런데 나보다 더 「남자」같은 여자들을 최근작 「산부인과」를 만들면서 많이 만나게 되었다.

「산부인과」는 모든 인간이 태어나는 현장이다. 하지만 인간의 절반인 남성은 경험할 수도, 진정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여성들만의 비의의 현장이기도 하다. 남성감독인 나는 산부인과의 진료실, 복도, 분만실, 수술실 등에 카메라를 놓고 「엿보기」 「엿듣기」방식으로 이 영화를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작업을 통해서 내가 발견한 것은 남성이 휘두르는 폭력과 권위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남성문화에 편입되어 버린 여성들이다. 사내아이에 대한 집착은 여성들이 더 강했고 부부관계에서의 성에 대한 왜곡된 의식들은 남성중심의 문화 그대로였다. 남편의 아이를 밴 첩을 데리고 와 낙태를 시키려고 한바탕 난리를 피운 중년여성은 천연덕스럽게 의사에게 『남편의 바람기를 잡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문의를 한다. 성적인 매력에 의한 남녀관계의 왜곡을 스스로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란한 성생활으로 낙태를 대여섯번이나 해치운 젊은 여성은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과거를 속이기 위해 처녀막재생수술을 해달라고 찾아온다. 이 여성은 쾌락과 결혼을 별개로 생각하는 남성중심적 사고에 자연스럽게 동화돼 있다. 이런 현실은 그대로 영화속 한장면으로 반영되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쉽게 포기하는 여성들보다는 「자의식이 건강하고 에너지가 충만한 여성들이 많아질수록 이 사회가 활기차고 더욱 건강해 질 수 있다」는 나의 논리가 현실화할 날은 언제일까.

박철수 감독은 48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중매로 만난 아내와 고1인 딸, 초등 3년생인 아들과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서 살고있다. 지난해 선보인 「학생부군신위」로 몬트리올 영화제 최우수예술공헌상과 타쉬겐트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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