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에 「늑대와 소년」이 있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두번이나 거짓말을 한 양치기 소년은 세번째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동네사람들의 불신과 무관심으로 늑대에게 물려 죽었다.우리는 이 우화에서 『거짓말을 일삼다 죽었고, 그래서 거짓말은 나쁘다』는 사건의 결과, 혹은 사후 질타만 배운다. 이 우화의 발상지인 서구에서는 「정직이 최상의 방편」이라는 금언과 함께 『소년이 왜 그러한 거짓말을 했을까』하는 의문과 예방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 세번이나 거짓말을 한 그 소년은 죽어 없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자책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 후에는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외치는 제2, 제3의 양치기 소년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의 우화는 『연거푸 거짓말을 한 소년은 늑대에 물려 죽었다』고 끝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우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소년이 죽자 마을 사람들은 머리를 맞댔다. 「왜」 때문이었다. 하루종일 「침묵의 양들」을 따라다녀야 하는 소년은(양치기 할아버지가 아니었기에 더욱) 거짓말로나마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을 것이라는 점을 그들은 인식했다. 그래서 소년의 무료함과 소외감을 없앨 수 있는 각종 「방안」들이 나왔고 그들의 방안은 지켜졌다. 그 후 「늑대가 나타났다」는 사건을 만들어 무료와 소외를 달래려는 양치기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건과 사고는 반복되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특히 원인과 배경을 짚어보면 그 악순환의 고리는 더욱 뚜렷이 보인다. 괌의 니미츠힐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사고는 93년 7월 목포의 운거산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의 여객기 추락사고와 너무나 흡사하다.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원인의 원천적 제거 밖에 없다. 그리고 머리를 맞댄 모두가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 『우째 이런일이…』라는 한탄과 질타만으로는 사고의 복제를 막을 수 없다. 『왜…』를 궁리하고, 그것을 제도화하고, 감시해나가야 한다. 차분히,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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