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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현장 밟지도 못하다니…”/유족들 또한번 “피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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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현장 밟지도 못하다니…”/유족들 또한번 “피눈물”

입력
1997.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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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버스서 내리지마라” 통제/“관광 온줄 아느냐” 항의와 분노괌의 니미츠힐은 통곡의 언덕이 돼 버렸다. 7일 대한항공 801편기 추락참사 현장을 방문한 유족들은 시신조차 찾지 못한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유족들은 격한 슬픔에 더하여 울분과 분노마저 느껴야 했다. 희생자의 넋이 깃들여 있을 사고현장 땅을 한번 밟아 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먼 발치서 달리는 버스안에서 태극무늬가 선명한 대한항공 801편기 꼬리날개만 바라봐야 하는 처지에 유족들은 격분했다.

유족 3백여명은 이날 상오 11시께 적십자회원, 자원봉사요원들과 함께 7대의 버스에 분승, 대책본부가 있는 퍼시픽스타호텔을 떠났다. 얼마쯤 달렸을까. 니미츠힐로 향하는 6번 도로를 버스가 느린 속도로 오를 때쯤 『미군과 관계 당국이 사고원인 조사를 위해 현장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버스에서 내릴 수 없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순간 버스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술렁임은 그러나 야자수 나무 사이로 사고항공기의 꼬리날개 등 잔해가 언뜻언뜻 비치기 시작하자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유족들은 『우리가 한가롭게 관광이라도 하러 온 줄 아느냐』며 거세게 항의했고 이내 버스안은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다.

원용자(48·여)씨는 『이역만리에서 숨진 아들 이름이라도 불러보려고, 메아리라도 들어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하다니 뭐하는 거냐』며 오열했다. 한 어머니는 딸의 이름을 외치며 『얘야, 내 새끼야』라며 울부짖었다. 여동생을 잃은 유희원(30·서울 중랑구 망우3동)씨는 『사고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쓰러지는 바람에 6촌 형님과 함께 이곳에 왔는데 동생이 잠들어 있는 곳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하고 돌아가면 부모님께 무슨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버스는 유족들의 절규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로를 시속 5㎞로 서행하며 현장을 지나친 뒤 1시간여만에 호텔로 돌아왔다. 유족들의 분노는 대한항공 관계자를 만나자 마침내 폭발했다. 일부 유족은 테이블을 뒤집어 엎기도 했다. 조카와 숙모를 잃은 편희석(44)씨는 『사고현장 보존이 걱정된다지만 유족들이 조사를 방해하고 계곡에 내려갈 만큼 몰지각한 사람도 아닌데 사전설명도 없이 해도 너무했다』며 『괌이 미국 땅이라고 유족들을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우리 정부와 대한항공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유족들이 밟아보지도 못한 니미츠힐 언덕위에는 미군이 지휘본부를 설치하고 사고원인조사활동을 벌이고 있었다.<괌=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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