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개월 공연에 관객 20만명/불륜소재·여배우 노출 등 외설시비 작품성으로 잠재워/연극사상 첫 실연광고도 등장3년 연속공연을 포함해 3년6개월의 장기공연. 20만명 최다 관객관람. 20만명×1만원=20억원의 입장수입. 서울 정도 600년 기념 타임캡슐에 소장된 2편의 연극 중 하나. 연극 「불 좀 꺼주세요」가 세운 기록들이다.
92년으로선 꽤 길게 잡은 3개월 공연기간은 3년이 되었다. 95년 한 해를 거르고 96년 6개월간 앙코르를 가졌다. 이 작품은 91년 초 극작가 이만희가 이도경 최정우 등 배우들과 의기투합해 『뭔가 새로운 걸 해보자』며 시작됐다. 이만희는 배우들을 놓고 구상 중이던 작품을 써내려갔다. 대학로극장의 정재진 대표까지 4명의 배우와 작가가 공동투자로 수익을 나누는 제작방식도 독특했다. 연출은 진작부터 강영걸로 정해졌다. 그는 89년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신들린 듯 일곱번 반을 읽고 댓바람에 『작가 좀 만나보자』며 인연을 맺은 연출자다.
외설연극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의 「불 좀 꺼주세요」가 이토록 성공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과거에 사랑했다가 따로 결혼한 남녀가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는 내용이 뭐 그리 대수였을까.
신선한 형식. 본신과 분신이 나란히 등장해 겉 다르고 속 다른 마음을 대변하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형식은 못 보던 것이었다. 남녀다역의 배우들은 바쁘게 변신하며 많은 연결장면을 만들어 영상적인 속도감을 구사했다. 이만희 특유의 언어. 『한국적 언어습성을 잘 터득한 작가』라는 강영걸의 평처럼 군더더기 없는 대사는 비약과 리듬이 절묘하다. 그리고 주제. 「불륜」이란 소재를 「정체된 인간 존재의 분갈이」라는 주제로 승화시키지 못했다면 연극은 반짝 인기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여배우의 상반신 노출, 즉 정면으로 벗은 가슴이 보이는 장면은 시비의 꼬투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강영걸은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다. 『친구들이 벗는다기에 보러 왔다가 「정말 미안하다. 너무 좋은 공연이었다」며 사과를 했어요. 대신 저녁값을 넉넉히 주고 돌아갔죠』
이만희는 개막 전 작품 내용이 우리 사회의 도덕률에 비추어 매도되지 않을까 하고 상당히 고민하기도 했다.
공연이 장기화하면서 연극사상 최초의 실연광고가 보도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막간에 배우가 코리아나화장품을 선전하는 내용을 실연하는 광고 자체가 국내 언론은 물론 일본방송 NHK에까지 보도되었고 코리아나는 대단한 광고효과를 얻었다. 3년째 계약을 갱신한 실연광고는 지금도 대학로극장에서 볼 수 있다.
「불 좀 꺼주세요」가 공연되는 동안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의 작품이 동시에 3곳에서 공연되며 모두 흥행에 성공한 적도 있었다. 이로써 이만희는 연극계의 중요한 극작가로서의 위치를 확실히 했다. 또 대원외고 교사를 그만두고 전업극작가로 정착한 변화도 겪었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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