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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공포 ‘겨울보다 추운 여름’/시화공단 기아협력업체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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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공포 ‘겨울보다 추운 여름’/시화공단 기아협력업체 르포

입력
1997.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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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사 “돌파구 없는한 시한부 생명”/공장 돌리지만 돈줄 막혀 애끊는 한숨『이러다가는 모두 함께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좌초위기에 놓인 기아자동차에 2만여종이 넘는 부품을 공급하는 1만7,000여 협력업체들이 그야말로 말라죽을 위기에 빠졌다. 사태해결의 최종책임을 져야할 정부가 팔짱을 낀채 「경영권 포기문제」를 놓고 채권은행과 기아그룹이 대립하는 사이 협력업체들은 갑자기 몰아닥친 「추운 여름」을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6일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에 물품을 납품하는 500여 1·2·3차 협력업체가 몰려있는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은 곧 다가올 부도태풍의 전조인듯 의외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화공단을 관리하는 산업단지공단 서부지역본부 김병호(53) 기업지원처장은 『공단에 입주한 기아협력업체중 아직 부도나 조업중단사태까지 직면한 업체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지는 오래』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는 또 『기아자동차가 실시한 할인판매때문에 최근에는 협력업체들의 작업량이 오히려 종전보다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보름안으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연쇄부도는 불가피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하오 1시 기아자동차에 20여종의 프레스부품을 공급하는 S기계는 성하의 햇볕에도 불구, 굉음을 울리며 공장이 가동되고 있었다. 100여명의 현장직원들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120㏈이 넘는 쿵쾅거리는 기계소리때문에 귀막이를 한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회사를 지켜야 할 사장 노모(54)씨는 자리에 없었다. 『사장님은 지난달 15일 기아그룹 좌초이후 사방팔방으로 자금을 구하러 다니십니다』 사장이 자리를 비운 공장을 지키고 있는 회사상무의 귀띔이었다.

은행지점장을 만났지만 별소득없이 하오 2시30분께 돌아온 노사장이 전하는 협력업체들의 자금난은 최악을 넘어서고 있었다. 정부의 지시와는 달리 은행들의 자금공급이 끊긴지는 20일이 넘었고 이제는 친구·친척을 빚보증세워 마구잡이로 돈을 끌어대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정부에서 지시를 내려도 은행지점에서는 꼼짝도 않습니다. 안면있는 지점장들마저 「본점에서는 어음할인을 지시하지만 문제가 되면 애꿎은 지점장이 모든 책임을 지게된다」며 담보없는 어음할인을 거절하고 있다』고 노사장은 말했다. 한때 보증수표였던 기아자동차 어음이 휴지조각이 된 것이다.

노사장은 또 『친구를 빚보증 세워 얻은 2억원으로 지난 보름동안은 근근히 버텨왔지만 이제는 73년 사업을 시작한뒤 24년만에 처음으로 직원에게 줄 월급도 구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H정밀은 은행담보로 내놓을 부동산은 있는데도 기아자동차가 어음마저 제대로 끊어주지 않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회사 손모사장은 『기아에 2억원을 납품했는데 지난달말 1억원짜리 어음을 받은게 전부』라고 말했다. 손사장은 또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못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8억원가까운 직원 퇴직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버텨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되자 2∼3일전부터는 「조금만 버티자」며 서로를 격려하던 협력업체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고 있다. 시화공단관계자에 따르면 기아계열사인 기아모텍에 10억원을 납품하고도 대금을 받지 못한 D전자가 자금난끝에 공장부지를 은밀히 내놓았고 H금형은 기업으로서는 「금치산 선고」나 다름없는 법정관리를 신청할 준비까지 하고 있다.

S기계 노사장은 『앞으로 특단의 조치가 없이 이같은 현상이 보름이상 방치될 경우 실핏줄처럼 얽혀 있는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기아자동차는 물론 1만7,000여 협력업체가 공멸하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국가경제는 큰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 틀림없다』고 경고했다.

판단착오로 5,000억원이 넘는 공사비를 들이고도 시화호를 오염덩어리 호수로 만들었던 것처럼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기아사태에도 재연, 시화공단 입주업체는 물론 전국 1만7,000여 협력업체를 연쇄부도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조철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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