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암 단층마술이 빚어낸 천혜의 절경 채석강/청송이 수묵화같이 둘러선 변산해수욕장 고운모래밭/내소사 입구 아름드리 전나무숲/동해에 설악이 있다면 서해엔 변산이 있다마침내 채석강 앞에서 언어는 무력해진다. 기암괴석, 천하절경…. 미사여구도 누가 될 뿐이다. 그냥 소박하게 직설적으로, 케케묵은 헌 책을 수만권 켜켜이 쌓아 둔 것이 그대로 굳어 바위가 됐다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수성암이 단층이라는 마술로 빚어낸 거대한 보석 채석강을 왼쪽 어깨에 비스듬히 두르고 있는 곳이 서해 변산반도 국립공원이다. 천혜의 절경을 향해 푸른 파도가 끊임없이 넘실대고, 내륙으로 조금만 가면 빽빽한 수림 사이에는 선인들의 숨결이 생생하다. 덕택에 변산반도는 몰려드는 피서객들로 연일 즐거운 비명이다. 본격 휴가시즌이 시작된 7월이후 하루 평균 1만5,000여명이 변산의 풍물을 즐기러 오고 있다.
옛 시인묵객들은 이곳의 짜임새 있는 경관을 두고 「변산팔경」이라는 이름으로 칭송했다. 웅연조대, 직소폭포, 내소모종, 명월운무, 서해낙조, 채석범주, 지포신경, 개암고적. 내소사의 저녁종, 채석강앞 돛단배, 개암사의 유물 등을 일컫는 말이다. 과연 이 지역은 선인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래서 가고파문화유적답사단(02―732―5550)은 개발의 여지가 많은 변산반도의 관광자원 및 문화유산에 주목하고 있다. 답사단에서 일하고 있는 임용철씨는 『여기는 자연보전이 어느 곳보다 잘 된데다 백제의 역사가 빼어난 풍광과 어울려 운치가 그윽하다』고 말한다.
동해에 설악이 있다면, 서해에는 변산이다. 설악이 외설악과 내설악으로 나뉘는 것처럼, 변산 역시 「산의 변산」 내변산과 「바다의 변산」 외변산으로 나뉜다. 외변산 9㎢는 서북단 계화와 남단 줄포 사이를 잇는 해안지대. 그 속 147㎢에 달하는 산악지대가 내변산이다.
여름에는 뭐니뭐니해도 해수욕이다. 변산 지역에는 모두 4곳의 잘 단장된 해수욕장이 있다. 고사포, 격포, 상록해수욕장도 좋지만, 변산 해수욕장이 압권이다. 고운 모래밭과 수묵화같은 청송의 조화가 특히 아름답다.
민물낚시와 바다낚시의 즐거움으로 전국의 꾼들을 손짓하는 왕포, 전장 30m규모의 직소폭포, 이름 그대로 붉은색 암반과 절벽으로 이뤄진 해안이 인상적인 적벽강, 개암사 위에 우뚝 솟아있는 두 개의 거대한 바위 등 절경들이 서로 절묘한 대구로 화답한다. 산과 바다가 한데 잘 짜여진 곳이다. 후박나무, 꽝꽝나무, 호랑가시나무 등 귀한 식물이 어우러져 천연기념물 군락지로 지정되기도 했다.
산과 바다의 조화를 닮아, 변산땅에는 과거가 현재와 서로 손잡고 있다. 변산의 최고봉 기상봉은 불과 509m. 야트막해 사람과 더 가깝다. 내변산 넓은 자락에는 내소사와 개암사 등 1,300년을 버틴 삼국시대의 두 명찰이 훌륭히 보존되고 있다.
웅장한 대웅전을 가진 내소사는 대웅보전, 고려동종, 화엄경사본, 대형괘불(9m×20㎝×9m) 등 국가 지정 보물을 넉점 갖고 있다는 사실덕에 더 커보인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 새벽 예불 또한 유명하다. 보통 일직선상에 놓이기 마련인 절 건물들, 예를 들어 대웅전―앞의 본탑―일주문―천왕문 등을 잇는 선이 이 절에서는 약간 삐뚤어져 있다는 점도 눈여겨 둘 만하다. 진입로 좌우로 600m 늘어 선 높이 70m의 아름드리 전나무 대열이 드리우는 짙은 그늘 속을 미음완보하니, 여행객의 여름은 벌써 저만치 물러 앉는다.
그러나 변산일대는 지금 후끈 달아 있다. 거대한 변화의 열기다. 변산군 상단부 4만100㏊에 걸쳐 땅을 만드는 「새만금 종합개발」이 2004년 완공을 목표로 7년째 접어 든 까닭이다. 없던 군이 하나 솟아 오르는 셈이다. 변산반도 국립공원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예로부터 조선 8경 또는 호남 5대 명산으로 이름높던 변산반도에 본격 변신의 불이 당겨진 것은 88년 6월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하면서부터. 이제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10살을 앞두고, 새 기운이 필요하다.
『변산은 여름 한철』이라고 국립공원 관리소장 김준기(56)씨는 말했다. 이제 변산은 관광명소로서 제2의 탄생을 준비한다. 야영장과 주차장의 대폭 증설, 격포∼변산간 해안도로 확충 등을 통한 부활의 기운이 지금 변산반도를 감돌고 있다.
◎변산의 특산물/개암사 ‘원조죽염’ 유명/줄포만 젓갈 감칠맛 일품
변산반도의 해안선은 그야말로 호두속처럼 복잡하다. 당연히 전북지방 중 해안선이 가장 길다. 풍광도 다양하고, 먹거리도 많다는 말이다. 햇볕이 풍성해 천일염의 명산지다. 바둑판같은 염전에는 소금이 하얗게 익어 가고, 투박한 소금창고들은 새 소금을 기다린다.
천일염과 더불어 죽염은 변산이 자랑하는 특산물로 꼽힌다. 유명한 개암죽염을 탄생시킨 곳이 바로 개암사다. 개암사 골방 한 칸에서는 개암죽염을 따로 판다. 「원조」 시비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요즘 진짜 원조가 말 없이 거기 있다. 보살에게 물으니, 250g들이 통 2개를 한 박스로 포장해 8만8,000원에 판다고 답한다. 원조인데 뭐 특별한 효능이라도 있냐고 묻자, 다만 『확실하게 아홉 번 굽는다』며 미소를 짓는다.
변산 앞바다는 또 싱싱한 먹거리들을 땀의 댓가로 돌려준다. 바지락, 부안김, 갑오징어, 자연산 활어(농어, 우럭, 도미, 전어, 쭈꾸미)가 입에 짝짝 달라 붙는다. 특히 줄포만에서 잡히는 생선을 줄포의 천일염으로 담가 익힌 각종 젓갈의 감칠맛을 당해낼 성찬은 없다.
맛깔스런 음식으로 특히 이름난 곳이 있다. 바지락죽은 변산온천 옆의 온천가든(0683―83―4623), 오리탕과 오골계백숙은 우슬제 부근 어수대가든(0683―81―1228), 장어구이는 함구부락 입구의 늘봄가든(0683―81―0456) 이 유명하다. 3년째 민박업도 겸해오고 있는 상록바다횟집(0683―84―5913) 주인은 『25㎝가 족히 넘는 자연산 왕대하가 일미』라고 한다. 왕대하는 마리당 2,500원이고, 갑오징어는 1만5,000원선.<장병욱 기자>장병욱>
◎가는 길/김제서 열차 갈아타 변산으로/변산서 직행버스타고 격포행
서울에서 열차로 갈 경우, 김제까지 3시간10분만에 달린다. 통일호는 10∼20분 더 걸린다고 보면 된다. 김제까지 온 다음 기차를 갈아타고 부안을 거쳐 변산에서 내린다. 변산서 직행버스를 10㎞타고 격포로 가자.
강남에서 부안까지 고속버스로는 3시간50분 걸린다. 부안서 격포행 직행을 타면 된다.<변산=장병욱 기자>변산=장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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