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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여성작가가 본 ‘인간의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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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여성작가가 본 ‘인간의 심연’

입력
1997.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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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우리가 쏘아올린 파이어니어호」­유신공포 70년대 무대 현재의 절망·미래희망을 치밀·사실적으로 묘사/최윤 「겨울,아틀란티스」­실종된 애인을 찾는 주인공의 추적과정통해 안보이는 삶의 비밀 탐색한 사람은 파이어니어호를 타고 암울했던 유신의 시절로 가고, 또 한 사람은 아틀란티스 대륙으로 자아발견의 길을 떠난다.

장편소설 「우리가 쏘아올린 파이어니어호」(열림원 발행)와 「겨울, 아틀란티스」(문학동네 발행)를 각각 펴 낸 마흔넷 동갑내기 소설가 이선씨와 최윤씨.

파이어니어호는 72년 3월2일 발사된 목성탐사선이다. 이미 태양계를 벗어나 앞으로도 10만년은 외롭게 우주공간의 항해를 계속한다. 아틀란티스는 인류 역사의 어느 지점에서 침몰해버린 전설의 대륙. 미지의 것을 향하는 인간의 열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상징이다. 우주와 해저는 모두 심연이다.

마흔 고개를 이미 넘은 문단의 두 중견 여성작가는 각각 자신의 소설에서 20대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려 한다.

『느닷없이 암울했던 그 시절이 화려한 외투를 뒤집어쓰고 나타나 교문의 쇠창살 사이로 텅 빈 교정을 바라보던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선씨는 최근 유행처럼 번져가는 박정희신드롬을 어이없어 하며 『하필 그런 때 이 작품을 출간하게 돼 지극히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우리가…」는 바로 유신 선포 1년여가 지난 70년대 초의 대학가를 배경으로 한다. 한 여대의 학생회 간부·운동권 학생과 그들의 가족, 교수, 기관원, 기자 등이 주인공이다.

「80년대가 치욕이라면 70년대는 공포였다」는 작가는 청년기를 보낸 그 공포의 시대를 특유의 치밀하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되살려놓고 있다. 파이어니어호는 그에게 무엇일까. 「자유 민주주의」와 「학원 민주화」를 위해 너는 무얼 했느냐고 묻는 운동권 친구에게 주인공은 파이어니어호를 아느냐고 엉뚱하게 되묻는다.

『우주선을 쏘아올리면 수십년이 영원으로 바뀌듯이 우리가 절망을 쏘아올리면 희망으로 바뀌는 거야. 그들이 더 강해지고 그래서 지금보다 더 어둡고 암담해진다고 해도 우리가 침묵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야.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면 절망일뿐이야. 아마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절망을 쏘아올리게 될 거야. 그래야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까』 작가의 파이어니어호는 현재의 절망을 궁극적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마음의 별이다.

이씨의 소설이 과거를 사실적으로 복원하고 있다면 최윤씨의 「겨울, 아틀란티스」는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삶과 소설 쓰기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28세의 소설가 지망생 이 학은 대학원 졸업식 날 갑자기 연인 Z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Z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한 회사의 홍보 일을 맡게 된 이 학은 성악가 한진영의 미행을 일거리로 받게 되는데, 한진영 역시 실종된 연인이었던 소설가 고 진을 찾는데 생을 보내고 있었다.

작가는 이러한 「갑작스런 사라짐」의 중첩구조와 부재하는 것에 대한 주인공들의 필사적인 추적과정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는 삶의 비밀」에 대한 탐색을 펼친다. 작가가 전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답이란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일 지 모르지만 그의 표현은 언제나 경쾌하고 명징하다. 「이십대 후반에, 혼자서, 삼 개월! 그건 때로 영원이다」 「오늘도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제안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 「서양식 장례행렬에서 빠져나온 것같은 졸업식 복장을 한 채로」 같은 표현들은 작품에 빛을 더한다.

이씨는 87년 「소설문학」 신인상을 받고 등단, 90년 「기억의 장례」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최씨는 88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해 「회색 눈사람」으로 동인문학상, 「하나코는 없다」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두 사람 다 30대 후반에 늦깎이로 등단한 작가지만 그만큼 원숙함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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