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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우리만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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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우리만화 많다

입력
1997.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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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저질만화 복제본 단속과 일부 성인만화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만화의 수준이 새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은 결국 독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다. 사실 우리 만화에는 어린이물 성인물 가릴 것 없이 좋은 작품도 많다. 좋은 만화가도 많다. 게다가 만화는 중요한 오락·교육매체이자 문화산업이 된 지 오래다. 좋은 만화를 특집으로 엮는다.<편집자 주> 「바지저고리 만화」로 일가를 이룬 이두호씨의 「뛰어야 벼룩이지」(대교출판 발행). 역시 그의 유명한 캐릭터 「장독대」가 등장한다.

주막을 하는 이모와 단 둘이 사는 독대는 포졸이 되고 싶어 포도청 앞을 기웃거리다 양 포교를 만나 사건을 해결할 기회를 얻는다. 기발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범인을 잡아들이는 과정이 흥미롭다.

박수동씨의 「공룡나라 우리엄마」(송우출판사)는 7컷 짜리 단편 160여편을 담았다. 꽁트식으로 편마다 허를 찌르는 반전이 짜릿하다. 이야기식으로 엮어가는 대부분의 만화와는 전혀 다른 구성이다. 어린이물을 즐겨보는 어른도 적지 않다.

○재미넘어 감동주는 성인물

성인물도 단순한 재미를 넘어 감동을 주는 것이 많다. 한달여 전 발행돼 인기를 끌고 있는 오 수씨의 「느티나무」(서울문화사)는 추억을 소재로 한다. 늙은 느티나무가 터줏대감으로 서 있는 시골분교를 배경으로 이곳에서 공부하고 뛰놀던 이들의 이제와 지난날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3권까지 나온 백성민씨의 장편시대극화 「토끼」(서울문화사)도 어지간한 역사소설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19세기초 조선 순조 때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을 배경으로 「천주학쟁이」의 사생아로 태어나 양반의 억압과 천대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주인공 토끼의 일대기를 힘차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잊혀진 토박이말을 적절히 구사하는가 하면 당시 제도와 민중의 삶의 형편을 꼼꼼히 짜넣고 있다. 오세호씨의 「낚시」는 일본에서도 호평받은 바 있다.

○효과적 학습도구로 자리매김

만화는 효과적인 학습도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어린이책 기획사인 우리누리가 글을 쓰고 윤정주씨가 그림을 그린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그린비)는 「섭씨와 화씨」 「터무니없다」같은 우리말의 어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쪽마다 오른쪽 위에 배치한 4컷 만화가 적절한 상황을 설정해 해당 단어의 쓰임새를 보여준다.

두산동아에서 내는 「세상을 빛낸 사람들」 시리즈는 곤충학자 파브르, 물리학자 뉴턴 등 위인의 일대기를 완전 컬러로 엮었다. 중간중간 도움설명과 토막상식을 넣어 학습효과를 높이고 있다.<이광일 기자>

◎바지저고리 만화가 이두호씨/“어려서부터 좋은 만화 읽게 해야죠”

이두호(54)씨는 누가 뭐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 중 한 사람이다. 「독대」나 「머털」이는 우리 만화의 대표적인 캐릭터가 된지 오래다. 어린이, 성인물 가릴 것 없이 그의 독특한 성취는 우리 만화를 한 단계 성숙시켰다. 그를 만나 좋은 만화를 그리는 비결을 들어봤다.

―비결이 뭡니까.

『비결이라기보다… 하루종일 작품 생각만 하다시피 합니다. 새벽 5시까지 화실에 출근해서 낮 2시까지 꼬박 쓰고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다음날 작업내용을 구상합니다. 재미있는 얘기를 듣거나 작품에 도움이 될만한 것은 꼭 기록해놓지요. 이쁜 동네골목도 작품배경으로 보입니다』

―스토리와 그림을 혼자서 다 하는데 힘들지 않습니까.

『돈 대줄테니 스토리 따로 콘티 따로, 데생 펜터치 따로 하는 식의 「공장만화」를 해보라는 유혹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스타일이 워낙 거기에는 안 맞아서… 이야기를 꾸미는 게 제일 어렵지요』

―옛시대를 배경으로 한 「바지저고리 만화」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처음에는 스포츠물, SF(과학소설)류, 홈드라마 등 여러 분야를 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부터 시류에 영합하기보다 저 나름의 분야를 개척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역사를 좋아한 탓인지 그렇게 됐습니다』

―요즘 저질 일본만화가 문젠데…

『꼭 성과 폭력이 있어야만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재미있는 세계가 많아요. 저질만화가 맥을 못추게 하려면 어려서부터 좋은 만화를 읽게 해서 안목과 품성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광일 기자>

□화제의 만화

◎부자의 그림일기/오세영/우리사회 그늘 그린 단편 13편 모아

오세영씨의 단행본 성인만화 「부자의 그림일기」(글논그림밭 발행)가 1년반전 나왔을 때 『만화가 이런 감동을 줄 수도 있구나』라고 놀란 이들이 많았다. 단편 13편을 모은 이 작품집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과 삶의 아픈 속살을 때로 무자비하게, 때로 가슴아프게 드러낸다.

표제작은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소녀 「부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어느날 그림일기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썼다. 『오늘은 10번부터 15번까지 환경정리당번이라서 엄마가 청소하러 학교에 오셨다. 다른 엄마들은 옷도이쁘게 입고 뾰족구두도 신고 왔는데 엄마는 몸빼에 쓰리빠를 신고 왔다. 다른 엄마들은 선생님한테 잘보일려고 수다만 떨고 엄마만 혼자 땀이나도록 청소를 했다. 화도나고 창피하기도 했다. 다른 엄마들은 선생님한테 하얀봉투를 냈다. 그런데 엄마는 안냈다. 집에오면서 울기만 하셨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이희재/바스콘셀로스 원작소설 쉽게 각색

이희재씨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미래미디어 발행)는 어린이만화의 스테디셀러다.

이 작품은 브라질 작가 바스콘셀로스의 원작소설을 어린이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각색한 것. 빈민층의 아픔까지도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꼬마 제제가 크리스마스를 맞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제는 성탄절 선물을 못받게 되자 실업자인 아버지가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아빠는 가난뱅이 멍텅구리야』라고 떠들다가 뒤늦게 잘못을 깨닫는다. 제제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결심한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구두닦이를 해서 번 돈으로 아빠가 좋아하는 최고급 담배 한 갑을 선물한다.

◎오뚝이 열전I/윤승운/시련을 헤쳐나간 조상들의 일대기

영수와 수능시험에 밀려 역사교육이 날로 빈곤해져가는 마당에 윤승운씨의 만화는 『국사교육의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겨레의 인걸 100인」 시리즈에 이어 나온 「오뚝이 열전 I」(송우출판사 발행)은 삶과 역사의 시련을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뚫고 나간 조상들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1권은 우선 강증산 최제우 등 민족종교 분야의 인물을 주로 엮었다. 원효편을 보면 원효가 친구인 의상스님이 날마다 먹는다는 하늘공양(밥)을 얻어먹으러 간 이야기가 나온다. 의상과 함께 기다려도 공양이 나오지 않자 원효는 먼저 떠난다. 나중에 알고보니 의상에게 공양을 가져오는 선녀를 원효의 지시에 따라 신장들이 막았던 것. 원효의 공력이 의상에 한수 앞선다는 것을 비유한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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