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고향바다·산·절 가장 생각나”『아! 여기인가』
4일 상오 7시25분.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면서 창밖으로 고국 땅의 정경이 펼쳐지자 훈 할머니는 탄성을 질렀다. 비행기로 고작 6시간이면 올 길을 50여년이나 걸려, 그것도 거친 자갈밭 길을 헤쳐가며 돌고 돌아온 것이다. 3일 저녁 프놈펜을 떠난 뒤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담담함을 잃지 않았던 할머니의 얼굴에 순간적인 경련이 일었다.
10여분 뒤 승객들이 모두 내리고 나서 할머니는 외손녀들과 함께 탑승교를 걸어나왔다. 할머니는 흰 블라우스에 진청색의 캄보디아 전통치마 차림이었지만, 50여년만에 처음으로 고국 땅에 내려선 두 발에는 한 달여동안 줄곧 신고 다녀 때가 묻은 흰 고무신이 신겨 있었다. 그의 목에는 6월 프놈펜을 방문한 「나눔의 집」 원장 혜진 스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염주가 걸려 있었다.
할머니는 카메라 플래시가 잇달아 터지자 몹시 긴장하면서도 비교적 침착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귀국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첫 질문에 답하던 중 감정에 복받쳐 울먹이기 시작했다.
―50여년만에 고국땅을 밟은 소감은.
『아주 기쁩니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아주 기쁩니다』
―한국서의 체류 계획은.
『가족을 찾고 싶습니다』
할머니는 검은색 손가방에서 『내 이름은 나미입니다. 혈육과 고향을 찾아주세요』라는 비뚤비뚤한 한글이 적힌 분홍색 도화지를 꺼내 기자들에게 펴보이며 『저를 불쌍히 여겨 가족을 찾아주세요』라고 말했다. 이 글은 프놈펜에서 할머니를 보살펴온 한국인 사업가 황기연씨가 적어준 것을 할머니가 보고 베낀 것이다.
―고향하면 가장 생각나는 것은.
『바다가 가장 생각납니다. 산과 절도 떠오릅니다』
이어 할머니는 「아리랑」을 불러 보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황씨에게서 배운 노래를 불러보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 몇마디 우리말을 읊조려 보이던 할머니는 장시간 여행으로 피로가 쌓인데다 갑작스럽게 플래시 세례를 받은 탓인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휠체어에 실린 채 입국장을 나섰다.<이희정 기자>이희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