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근처”“진동” 일관된 진술/인천·시흥·마산 등 5∼6군데 압축/새로운 기억땐 쉽게 이뤄질수도「훈」할머니가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할머니가 지금까지 진술한 내용을 종합한 뒤 국내에서 새로이 기억해 내는 부분들을 좇아 고향찾기에 나서야 하는 형편이다.
70이 넘은 고령인데다 50년이상 단절된 생활을 한 까닭에 고향이나 신변에 관한 진술들이 다소 엇갈리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몇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진술을 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고향찾기가 의외로 빨리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선 할머니는 자신의 집이 바닷가 근처에 있었고 주변에 염전이 있었으며 한나절정도 가면 큰 도시가 있었다고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억해 내고 있다. 고향 지명에 대해서도 「진동」이란 일관된 진술을 거듭하고 있다.
이중 염전에 대해서는 바닷물을 가둬 햇볕에 말린 뒤 소금을 긁어내는 모습을 구경했다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국립지리원에 따르면 현재 「진동」과 「지동」 「전동」 등 유사지명이 있는 곳도 90여곳에 이른다.
이에 따라 할머니가 군대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인 1940년대 초반 염전이 있었으며 지명이 유사한 해안가 마을이 할머니의 고향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은 인천과 경기 시흥시, 경남 마산시, 전북 부안군 등 5∼6곳으로 압축된다.
지금은 모두 매립된 상태지만 당시 인천에는 조선총독부가 관리하던 주안(현 주안역부근)과 남동(현 남동공단)염전이 있었고 서해안을 따라 조금 내려가 경기 시흥시에도 소래·군자 염전이 있었다.
한때 훈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일본인 다다쿠마 스토무씨가 『할머니의 고향이 진센(인천의 일본식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한 점과 일제시대 인천지역에서 염전이 가장 발달된 점으로 미뤄 인천근교가 고향일 가능성도 있다.
또 경남 마산시 진동면 진동리와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경남 고성군 마암면 두호리 일대도 일제시대 염전이 있었으며 「진동」이란 지명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할머니는 고향방문을 앞둔 15일밤 느닷없이 『마산이 큰 도시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해안 일대에서 일제시대 군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많았던 점으로 미뤄 마산 근교지역도 주목을 받는 곳이다.
이밖에도 자연부락 형태로 「진동」이란 지명이 있는 전북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일대도 할머니가 고향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 ▲바다 ▲염전 ▲나환자촌 등이 부근에 있는 곳이다.
할머니는 고국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기분이 좋다. 고향산천이 많이 변했다. 빨리 나가 보고 싶다』고 말해 앞으로 고향찾기에 나서면 추가적으로 결정적인 단서가 될만한 내용들을 기억해 낼 가능성이 높다.
고국을 방문한 할머니가 민속촌 등을 둘러보며 잊혀진 기억의 편린들을 찾아내고 직접 방문하는 마을에서 실마리를 찾아낸다면 할머니의 고향찾기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훈할머니 방문에 동행, 보호자역할을 하고 있는 이광준(40)씨는 『할머니가 고향방문을 계기로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며 『방문기간에 고향찾는 것에 희망을 걸어볼 만도 하다』고 말했다.<황양준 기자>황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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