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단행될 개각에서 경질여부가 주목됐던 고건 총리는 일단 유임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다. 재임기간이 4개월밖에 안된데다 별다른 과오가 없고 후임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 감안되는 듯하다. 이번에 총리가 경질된다면 김영삼 정부들어 일곱번째 총리가 나오게 된다. 「한 정권 최다총리」라는 기록은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별로 명예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사정이 이러함에도 당초 고총리의 경질론이 대두됐던 이유는 호남출신인 고총리로는 대선 관리의 공정성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공개적으로 그런 논리를 펴고나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얼굴은 없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세력이 상당수 여권내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대선관리의 공정성은 대통령의 의지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문제다. 김대통령이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데 그 아래서 야당을 편드는 「간 큰」 총리가 있을 수 있을까. 또 현재 총리에게 부여된 권한상 야당에게 유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대선의 공정관리를 위해 호남총리는 부적절하다는 주장은 이분법적 지역대립의식이 뼛속까지 스며있는데서나 가능한 발상이 아닐까. 역대 대선에서는 검찰 안기부 경찰 등 권력기관은 물론 일반 행정조직까지도 여당후보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총리가 엄정한 중립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야당을 편드는 셈이다.
여권의 일부세력들은 대선국면에서 총리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 총리를 경질해야하는 이유로 그의 소극성을 꼽는 목소리는 그런 기대와 무관치 않다. 자신의 인기관리에만 연연해 몸을 사린다는 지적은 그에게서 여당후보의 당선에 발벗고 나서는 적극성을 바랄 수 없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12월 대선은 우리사회의 난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국민적 리더십을 창출하는 기회여야 한다. 하지만 골수에 사무친 지역대결의식이 남아있는 한 그러한 바람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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