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미국의 TV에는 눈길을 끄는 광고 하나가 방영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밥 돌 전 공화당 상원원내총무가 광고 모델로 나서 한 신용카드를 선전하는 것이다. 광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낙선한 밥 돌이 고향마을로 들어선다. 비록 선거에 지기는 했지만 그를 아끼는 마을사람들이 『우리는 밥을 사랑한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마을 입구에 내걸고 박수로 그를 맞는다. 2차대전때 다쳐 오른손을 쓰지못하는 돌이 왼손으로 거수경례를 하는 것으로 마을 사람들의 환영에 답한다. 이어 그는 사람들과 함께 마을 술집으로 몰려 들어가 맥주 한잔씩을 돌린다. 그가 술값을 계산하려고 수표책을 꺼내자 『밥, 그동안 고생했어요』라며 다정하게 웃던 여주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바뀌면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다. 『나를 몰라보나』라는 표정의 어처구니없어 하는 그의 얼굴위로 카드가 부각된다」
밥 돌은 이 광고 외에도 2개의 광고에 모델로 나서고 있다. 얼마의 광고료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전액 모두 공익단체에 기증한다고 한다. 대선에 떨어진뒤에 정치는 손떼고 활발히 자선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대단하지만 자신이 낙선한 사실을 광고할 수 있다는 용기가 더욱 가상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되도록 입에 올리기조차 꺼릴 대목인데도 떳떳이 TV광고의 소재로 쓰는 것을 보면 「당선자의 용기」보다는 「낙선자의 용기」가 더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미국과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적 차이가 심하다고 하지만 요즘 신한국당 경선이후 「5인연대」 「보수대연합」 「독자출마」 등 갖가지 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너무나 큰 대조다. 물론 경선과정에서 「대표직을 이용, 대세몰이를 했다」 「돈을 뿌려 대의원을 샀다」는 등의 시비가 일었고 그래서 몇몇 후보는 억울하게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밥 돌처럼 자신의 낙선사실을 온 천하에 광고하는 용기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깨끗하게 패배를 시인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우리 정치의 수준이 유감이다.<워싱턴>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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