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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보건의료 붕괴위기/김영치(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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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보건의료 붕괴위기/김영치(전문가 진단)

입력
1997.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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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생산 60% 격감/전염병예방도 손못써/주민건강 차원을 넘어 국가적 생존능력 위협현재 북한주민의 심각한 영양실조와 이로 인해 높아진 사망률은 잇따른 대홍수의 일시적 후유증인가, 아니면 북한식 사회주의 모순의 필연인 병목현상의 압박징후인가. 모든 보건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책임지고 있는 북한의 국가기능 일부가 불가피한 재해로 일시적 마비상태에 놓여 있는 처지라면 지금 전개되고 있는 긴급원조로 급한 불을 끄고 한숨 돌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권 붕괴의 병인을 공유한 탓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북한체제가 거듭된 대홍수로 붕괴의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 급박성의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북한의 평양과 평안남북도 지방을 방문해 북한 보건의료의 실상을 조사, 평가작업을 시행한 미국 질병관리예방센터(CDC) 역학전문가가 전문적인 종합평가기법에 기초해 작성,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국가보건의료체계」는 붕괴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평안북도 한 탁아소 아기들의 경우 몸무게와 키를 측정, 미 국립보건통계센터와 CDC, 그리고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을 적용한 결과 9명의 신생아중 4명이 급성 영양실조로 판명되었다. 북한 보건부는 96년도에 5세이하 전 아동의 15.6%(324,000명)가 영양실조였고 이들 중 134명이 사망했다고 4월8일 공식 발표한 바 있다.

둘째, 홍수로 298개의 의료기관이 완전 파괴되거나 기능불능의 손괴를 입었고, 북한 유일의 경구수액 제조공장이 파괴되었으며, 95년 이후 의약품 생산이 60% 이상 격감되었다. 그 결과 직접 조사한 평안남북도의 4개 병원의 경우 의약품은 없고 단지 한약재만 공급되고 있었다.

셋째, 95년 이후 예방접종 사업이 정기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사실을 북한 보건부가 시인했고, 이에 따라 87년부터 94년까지 단 1건도 발생하지 않았던 소아마비가 95년 7건, 96년 6건 그리고 지난 1∼3월 사이 3건 발생이 확인됐다. 북한 보건당국은 소아마비와 결핵 백신이 특히 결핍상태라고 밝혔다.

이 충격적인 보고서가 의미하는 바는 매년 세계보건기구 총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 회의에서 기회있을 때마다 되풀이했던 『가장 선진적인 인민보건의료제도가 마련되어 있어 병 치료에 대한 걱정을 모르고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인민들의 세기적 염원이 빛나게 실현됐다』는 북한의 자랑과 선전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이었던가이다. 값싼 예방접종만으로 예방할 수 있는 소아마비가 북한 어린이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북한의 이른바 「인민보건사업」이 위기상황이라는 것과 그 위기가 재해에 의한 일시적이 것이 아닌 구조적인 것임을 진단할 수 있다.

또 의약품생산의 60%감소는 무엇을 뜻하는가. 물론 홍수로 시설 일부가 물에 잠기거나 파괴되어 가동이 중단된 원인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 산업의 생산실적은 이미 90년대 이전에 감소 추세였다. 따라서 의약품 원료난과 생산성 저하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이에 전력난과 홍수가 겹쳐 각종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생산이 40%를 밑도는 위기를 노정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북한체제의 가장 확실한 통치수단인 식량의 국가배급체계(PDS:Public Distribution System)가 실질적으로 마비상태인 점도 시사하는 바 크다. 북한 주민들이 하루 섭취 칼로리의 30% 이상을 PDS가 아닌 암시장에서 취득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 유엔의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의 판단이다.

한편 필자가 유엔개발계획, 세계은행, 미 국방성 중앙정보국 보건통계국, 북한 통계연감, 우리나라 통일원 등의 자료를 근거로 90년부터 96년까지 남북한 주민의 건강수준을 비교연구한 결과, 북한의 평균수명이 90년대 들어 오히려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현재 관찰되고 있는 북한주민의 높은 사망률이 단순한 홍수의 후유증이 아님을 웅변한다. 평균수명은 영아사망률을 비롯한 각종 사망률의 거울로, 한 나라 보건의료체계의 성과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이렇듯 지금 북한주민이 겪고 있는 심각한 영양실조의 만연, 급성전염병의 창궐, 질병이환율과 사망률의 급증, 병의원 및 보건의료 인프라의 기능상실 등 보건의료의 참혹한 실상은 단순한 자연재해의 후유증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의 「숙명적 기만」의 결과로, 북한주민이 건강의 차원을 넘어서 생존 위기에 처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나아가서 체제붕괴의 위험, 즉 국가로서의 지속적 생존 능력에 대한 심각성과 급박성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정세판단과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긴급 및 장·단기 대비책을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마련하는 통일시대 국가경영전략의 수립이 시급한 시점이다.<한국보건의료관리연구원 보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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