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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에 혈안들일세(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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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에 혈안들일세(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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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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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일선에서 뛰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 한가지 있다. 이왕 정치를 하려면 4년이건 5년이건 7년이건 대통령을 해야지, 그밖의 자리는 무엇이건 해봤자 별 수 없다는 것이다.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지만 대통령이 곧바로 임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총리의 감투는 언제라도 대통령이 벗길 수 있으니 그 밑의 장관들의 신세는 더욱 처량하다. 장관의 목이 불과 며칠만에 떨어진 예는 얼마든지 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그 소식을 라디오로 듣고 알았다는 장관도 있었다.국회의장의 선출은 물론 대법원장의 임명도 국회를 거쳐야만 한다고 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대통령이 원치 않는 국회의장이나 대법원장이 탄생한 역사가 없다면 말 안해도 알만한 일이다.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무에 속한다』고 되어 있지만, 행정권 만이 아니라 입법권·사법권도 행정권의 수반인 대통령의 수중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은 모두가 대통령이 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 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이회창 김대중 김종필씨 등 세 후보는 이미 당의 공천을 받은 몸이라 TV토론이라는 명목으로 유권자 앞에 나아가 각자의 정견을 발표할 기회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에서 TV가 차지하는 비율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안방에서 지면 어떤 후보도 승산이 없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오늘의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인이 앞장서서 하는 것이고, 그들의 최신 무기는 여론조사라는 것이다. 권모와 술수가 여기에도 끼여들어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어쨌건 선거의 결과를 점치는 데 있어서는 귀신과도 같다. 옛날의 점쟁이들은 저리가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세 후보들의 1차 TV토론결과 순위는 여전히 이회창, 김대중, 김종필이라지만 지지자의 수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한국당 경선직후인 7월21일 여론조사 때에는 이회창 50.3%, 김대중 28.2%, 김종필 11.2%, 무응답 10.3%였는데 최근 조사에서는 36%, 31%, 14%로 이회창 후보가 14.3% 포인트나 지지도가 감소됐다는 사실이 특기할만하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얼마 뒤에는 2위가 1위가 되고, 만일 야권이 단일후보만 낼 수 있으면 정권교체는 무난하리라는 전망이다. 일이 이렇게 엿장수 마음대로 쉽게 풀려나가 야권에서 대통령이 탄생하는 한국사의 「이변」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민심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

이회창 신한국당후보는 후보 경선과정에서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이므로 승리의 축배를 들어볼 겨를도 없이 낙선된 다른 후보들의 불평과 불만을 감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두 아들의 병역문제가 겹쳤다. 후보 자신은 「적법」을 주장하지만 국민이 그것을 변명으로 간주하며 그의 두 아들을 병역기피자로 낙인을 찍으니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할 뿐 아니라 이회창 후보의 대통령 자격문제가 크게 거론될 가능성이 농후하게 되었다. 『가난한 우리집 아들은 군대에 가서 그 고생을 다하고 돌아왔는데, 세도 좋은 당신 집안에 태어난 두 아들은 군대복무를 면제받았다니,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노여움에 가득찬 이런 넋두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작금의 민심이고 보면, 아들들이 군대에 가지 않은 것이 이회창 후보에게 이미 엄청난 타격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지난번 신한국당의 대표직 사퇴문제를 두고도 끝까지 버틴 그의 「투지」로 미루어 볼때 그가 쉽게 후보자리를 물러날 사람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게 되면 여당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나라의 정치판에서는 대통령 한사람 밖에 정치적으로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저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혈안이 되어 혈투를 벌이는 것은 본인은 물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도 매우 불행한 일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대통령직은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가 아닌가. 사람이 제정신으로야 어찌 감히 전직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처럼 되고 전두환처럼 되고 노태우처럼 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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