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세대’의 불안감 점으로 푼다/경제발전기에 성장,안정희구 강한 세대/그러나 직장선 명예퇴직 사정권에 있고 실력있는 20대 후배들에게 쫓기면서 80년대 이념의 시대 쌓았던 합리성 실종서울 여의도에서 조그만 인력컨설팅회사를 경영하는 명모(32)씨는 1년에 최소한 2번씩은 역술원을 찾는다. 그는 94년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이 회사를 차릴 때도 한 역술가의 상담을 받았다. 당시 『사업을 시작하려면 올해를 넘겨 많은 사람과 연을 맺을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좋겠다. 회사도 남동방향에 터를 잡아야 한다』는 역술가의 조언에 따라 강서구 목동에서 거주하던 그는 비싼 임대료를 감수하면서 남동방향인 여의도에 자리를 잡았다. 또 개업시기도 1년 늦춰 95년 10월께 문을 열었다. 그는 『역술가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마당에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불황의 여파로 대기업들까지 쓰러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각 기업들이 감량경영으로 고정인력을 줄이고 있는 추세이지만 프로그래머 등 임시 고급인력의 활용은 약간씩 늘어나고 있어 회사를 꾸려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며 『지금도 역술가의 조언을 받아들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비단 명씨만의 사정은 아니다. 「용하다」고 소문난 역술원이나 신점집에는 30대들이 전체 손님의 절반을 넘을 만큼 30대 주부나 회사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격동기였던 80년대 대학시절을 보내며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했던 30대들이지만 그들은 알게 모르게 운명론의 영향을 받고있는 셈이다.
심지어는 막스레닌주의 이론을 토대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당시의 운동권마저도 역술이나 풍수지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지금은 학원강사지만 대학시절 운동권으로 구속경험까지 있는 신모(33)씨는 한 해의 시작무렵이나 이사 등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는 어김없이 점집을 찾는다. 신씨는 『역술인의 말을 들으면 다소나마 결정에 도움이 되고 정서적 위안을 찾을 수 있다』며 『좋지 않다고 하는 일을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동국대 사회학과 김익기 교수가 서울에 사는 성인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풍수지리설을 「믿거나 믿는 편」이라고 대답한 30대는 74%로 50대 65%, 40대 70%보다 더 많았다. 김교수는 『40∼50대는 60, 70년대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개발에 나섰지만 정서적으로는 안정돼 있었다. 반면 30대는 경제적으로는 앞세대보다 풍요하지만 오히려 급변하는 상황에 적응하기에 바빴다』며 『30대의 이같은 주변인적 성향에서 나오는 불안감이 무속이나 점술에 기대고 싶은 심리로 연결된다』고 분석했다.
현재 기업체의 과·차장급인 30대는 지난해부터 몰아친 명예퇴직 회오리의 사정권에서는 벗어났지만 「다음은 내 차례」라는 위기감을 안고 생활하고 있다. 대학시절 해외여행이나 외국어학연수를 꿈도 꾸지 못했던 30대는 외국어에 유창하고 컴퓨터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한 20대 후배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조직사회에서 도태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둘러쌓여 있다.
그들은 보릿고개를 체험한 40∼50대와 달리 경제적 풍요위에서 성장했기에 안정된 생활에 대한 희구는 유달리 강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안정된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급변하는 사회에 잘 적응해야 하고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불안정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이 80년대 「이념의 시대」를 살며 쌓아왔던 냉철한 이성과 합리성을 무디게 만들었다. 80년대 후반 대학이나 사회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초기 컴퓨터대중화의 일선에 서 있었던 이들이 역술과 무속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수원대 철학과 이주향 교수는 이에대해 『30대는 대학시절 사회과학서적을 접하며 이성과 논리를 추구했지만 오히려 감성적인 부분의 개발은 미약했다. 그런데 경쟁사회에 내몰려 불안감과 위기감이 증폭되다 보니 허를 찔리고 만 것』이라고 분석했다. 30대는 40대와 20대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불안정한 위치를 극복하는데 더 이상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이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돼 역술이나 무속에 의지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사회학자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는다. 이들은 『평소 생활이 안정돼 있는 사람들은 굳이 역술이나 점에 의존하지 않는다』며 『사회가 워낙 급변하고 그 중심에 30대가 서있다보니 그들에게 무속과 역술에라도 의지해 불투명한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치인 등 많은 단골손님을 확보하고 있는 서울 성북구 정릉의 무속인 신모씨도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불치병이나 위기에 내몰렸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속인을 찾는 것처럼 30대들도 변화하는 상황에 끊임없이 자신을 적응시키려다 보니 역술이나 무속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훈구(심리학과) 교수는 『30대가 역술과 무속에 의지하는 경향을 굳이 사회현상과 결부시켜 본다면 그들이 베이붐시대에 태어나 다른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심한 경쟁속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민주화투쟁의 주역답게 건전하고 합리적인 행동양식, 냉철한 판단력을 회복한다면 불안심리 등은 쉽게 가라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30대 역술인/13년째 운명상담 이한국씨/흔들리는 30대 손님들/승진·사업성공보다는 ‘진로변화’ 상담이 많아
서울 신촌에서 13년째 운명 상담을 해오고 있는 30대 역술인 이한국(35)씨는 상담자들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 특히 찾아오는 상담자중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30대가 토해내는 고민과 갈등에서 그들의 세상살이를 꿰뚫을 수 있다. 30대들의 상담 내용은 우리사회의 30대가 차지하는 위치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더 늦기전에 직장을 바꿔야겠는데 괜찮겠느냐』 『이 사업으론 희망이 없어 다른 사업을 하고 싶은데…』 『직장생활 때문에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하다. 이혼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명예퇴직의 불안감이나 사업부도의 위기감을 이기기위해, 직장생활에 치여 불안하기 짝이 없는 가정생활을 추스리기위해, 창업과 같은 인생의 승부수를 던지며 희망과 확신을 얻기위해 그들은 자천타천으로 이씨를 찾는다.
이씨는 『10여년전의 30대(지금의 40∼50대)는 직장에서의 승진, 진행하고 있는 사업의 성공여부가 주된 상담내용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의 30대는 현 위치에서 아예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30대가 갖는 불안심리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또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20대와 기성의 권위나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40대 사이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어서인지 지금의 30대는 사춘기때처럼 정서가 들떠 있고 불안해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평소 이씨의 철학원을 찾는 30대의 90%는 주부들인데 이중 70∼80%는 자신의 일보다는 남편의 바깥일을 상담키위해 온다.
이씨는 『이혼결정이나 인생의 중대사를 앞에 두고 40∼50대보다는 30대의 발길이 늘어나는 것은 그 만큼 그들의 정서와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다』며 『운명상담은 현재의 자기 분수와 처지를 정확히 깨닫게 해 불확실한 미래를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이상은 아니다』고 말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30대 주부 61% “점봤다”… ‘궁합때문에’ 1위
30대 주부들은 결혼전에는 사주나 궁합을 보기 위해, 결혼이후에 집안의 걱정거리가 있을 때 점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 또 40대보다는 점이나 사주 등 미신에 의지하는 정도가 약하지만 결혼이전인 20대에 비하면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제일제당이 올해 전국의 20∼40대 주부 1,000명을 대상으로 「점이나 사주에 대한 의식조사」를 한 결과에 의하면 30대의 60.9%가 점이나 사주를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20대는 이보다 다소 낮은 55.1%, 40대는 다소 높은 69.8%였다.
점을 보는 이유로 「결혼때문에(궁합을 보기위해)(28.8%)」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집안에 걱정거리가 있어서(23.6%)」, 「삶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17.9%)」 순으로 응답했다.
또 30대는 왕성한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여서인지 이사·개업을 앞두고 점을 보는 비율(9.4%)이 꽤 높아 4위를 차지했다. 한편 점을 본 뒤 그 결과에 신경을 쓴다는 응답도 70.8%나 됐다. 복채는 평균 1만8,200원을 내는 것으로 조사됐다.<김정곤 기자>김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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