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상 마운드 지킬 것”/경기집중탓 교민응원에 답례못해 죄송/‘정상 서려면 야구전에 영어’ 늘 마음새겨시카고 커브스의 홈인 리글리구장은 1914년에 건립, 메이저리그구장 가운데 3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리글리구장보다 오래된 야구장은 1912년 세워진 보스턴의 펜웨이파크, 디트로이트의 타이거스타디움 밖에 없다. 미국인들은 리글리구장을 메이저리그의 메카처럼 여긴다. 리글리 구장의 조명탑은 메이저리그 구장중 가장 늦은 88년에야 만들어졌는데 야구는 낮에 해야하는 게임이라는 것이 그 이유일 만큼 이곳은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서려있는 곳이다. LA 다저스의 「코리안 특급」 박찬호(24)가 1일 메이저리그의 메카에서 대망의 10승을 거뒀다. 리글리구장을 찾은 3만9,145명의 야구팬들은 박찬호에게 존경과 함께 진심어린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경기후 박찬호를 만나 메이저리그 10승에 이르기까지의 감회를 들어봤다.
―94년 태평양을 건널 때 솔직히 어떤 각오를 가지고 있었는가.
『사실 내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10승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늘 경기에 많은 교민들이 찾아왔다. 나도 놀랐다. 그들을 보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다행이고 또 자랑스럽다』
―10승의 기쁨을 가장 먼저 누구에게 전하고 싶은가.
『우리 한국인은 무슨 일이 생길경우 어머니를 먼저 떠올린다. LA에서 혼자 TV를 보셨을 어머니에게 먼저 전하고 싶다』(실제로 박찬호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경기를 보셨느냐고 물어봤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망한 투수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야구장을 찾아주시는 교민들에게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번이라도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한국일보와의 특별 인터뷰를 통해 제 마음을 전하게 돼 다행스럽다. 처음 미국에 와서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해프닝이 많았다. 「야, 이녀석아」라는 어감의 「헤이 듀드」라는 말을 라소다 감독과 오말리구단주에게 했을 정도다. 또 하나 소개하겠다. 우리들은 목욕탕에 가면 서로 등을 밀어 주지 않는가. 미국생활 초기인 94년 2월 플로리다 베로비치에서 전지훈련을 할때 훈련 후 샤워를 하며 마이너리그 동료의 등을 내가 먼저 밀어줬다. 그리고 나서 나도 해달라고 했더니 같이 샤워하던 선수들이 수근거리며 다 도망갔다. 나중에야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이는 미국선수들이 동성연애자로 오해한 것이다)
―일본어로 인터뷰하는 노모와 달리 미국 기자들과 영어로 인터뷰한다. 영어를 잘하지만 통역을 요청해 한국어로 하는 것은 어떤가.
『나는 생각이 다르다. 세계 정상의 미국야구를 배우러 메이저리그에 왔는데 그들의 언어를 모르고서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는가. 나는 메이저리그 정상의 투수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를 알아야 한다. 94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미국에 사시는 전 OB 베어스 이재우 감독님을 만난 적이 있다. 이재우 감독님은 미국야구에서 트리플 A까지 뛰셨지만 끝내 메이저리그에는 올라 가지 못했다. 그분은 「영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인을 이길 수 없었다」고 했다. 또한 「메이저리그 정상의 투수가 되려면 먼저 영어, 그다음이 야구」라고 말씀하셨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무려 5연승이다.
『내가 잘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야구는 함께 하는 스포츠다. 팀 동료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 그래서 경기를 쉽게 풀어 나가고 있다. 세상사는게 이런 것이라는 것을 올해 들어서 절실히 깨닫고 있다』
―9회 교체될 때의 기분은.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있다. 나도 욕심이 있었다. 또 욕심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함께 하는 일에 혼자서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우리팀의 마무리 투수 토드 워렐을 믿었다. 워렐이 시즌초 내 승리를 날렸던 적이 있었지만 언젠가 내 승리를 지켜줄 것으로 믿어왔다』
―시카고에서 메이저리그 첫승을 했고 또 시즌 10승을 했다.
『이상하게 편하게 느껴지는 구장이다. 오늘 경기를 앞두고 여기서 의미있는 일이 생길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여유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제 올해 목표였던 10승을 해냈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항상 한국 스포츠맨들의 수명이 짧다는 것을 생각해 왔다. 우리체력이라면 어떤 민족에게도 뒤질 것이 없다. 나는 몇 승을 목표로 삼고 싶지 않다. 우리 한민족도 참을성과 지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앞으로 10년이 아니라 더 오래 마운드에 서겠다. 오늘 누린 10승의 기쁨은 내가 야구를 오래 하는 한 언제든지 맛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메이저리그가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전통이다. 야구를 만들고 성장시켜온 미국인들의 인내에 대해 항상 감탄하고 있다. 여기에 와서 지낸 3년간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어려웠을 때도 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려움을 견뎌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사랑하는 야구를 할 수 있는 날이 앞으로 많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
―마지막으로 고국의 팬들에게 인사를 해달라.
『우선 한국일보 독자 여러분께 늘 성원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내게 지속적으로 용기를 주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늘 생각하게 만들어줬다. 우리 모두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행운으로 여겼으면 좋겠다』<시카고=장윤호 특파원>시카고=장윤호>
□약력
▲73년 충남 공주 출생
▲92년 공주고졸, 한양대 입학
▲94년 1월11일 한양대 2년 중퇴후 LA다저스 입단
▲94년 4월2일 미 프로야구사상 17번째로 메이저리그 직행
▲94년 4월9일 메이저리그 첫 경기출장(애틀랜타전)
▲96년 4월7일 메이저리그 첫승(시카고 커브스전)
▲97년 8월1일 메이저리그 10승 돌파
▲연봉: 27만달러(약 2억4,000만원)
▲통산 15승10패, 직구시속 최고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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