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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불가/이현화 작·채윤일 연출(화제의 연극,숨겨진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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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불가/이현화 작·채윤일 연출(화제의 연극,숨겨진 이야기:1)

입력
1997.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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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연극제 기념 특집/서울연극제 도전 ‘5전6기’/고문받는 여배우 등 파격장면… “무슨 연극이 그렇지” 숱한 논란올해는 한국연극사상 최대규모의 세계연극제가 열린다. 국제극예술협회(ITI)의 총회와 함께 이달 31일부터 45일간 서울과 과천에서 25개국 100여편의 연극 음악 무용 등 공연이 펼쳐진다. 세계연극제 공연에 참가하는 국내 40∼50대 연출가들을 중심으로, 세간에 화제를 일으켰던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화제작 시리즈를 마련한다.<편집자 주>

87년 서울연극제 마지막작품으로 이현화 작·채윤일 연출의 「불가불가」(극단 쎄실)가 올려지자 관객들 사이에서는 『입장료를 환불해 달라』 『배우가 칼에 맞았으니 저녁공연은 다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여배우가 허공에 매달려 고문을 받는 장면은 연일 화제의 초점이었다. 여배우가 거의 옷을 벗은 채 매달려 양쪽 유두에 +-전극을 연결하고 전기고문을 당하는 것은 뒷모습 뿐이었지만 대단한 충격이었다.

관객들의 환불소동은 연극 리허설을 그린 공연내용을 실제와 혼동한 탓이다. 「불가불가」는 한일합방때 대신이 「불가/불가」, 「불가불/가」의 정반대로 읽힐 수 있는 대답을 했다는 극중극의 한 대목. 이밖에 계백장군의 최후의 임전, 독립투사에 대한 고문 등 한국역사의 몇 순간이 극중극으로 삽입되어 기회주의냐, 결단이냐라는 역사적 책임을 조명한다.

화제의 여배우는 바로 채윤일의 친동생인 채승희. 원래는 다른 배우가 연습을 해 왔으나 이 대목의 연기가 영 마뜩찮아 개막 보름 전 「전격교체」됐다. 채윤일의 남동생은 『어떻게 남도 아닌 여동생에게 이런 연기를 시키느냐』고 얼굴이 시뻘개져서 항의를 했으나 정작 여동생은 개의치 않았다.

이 작품은 그 해 서울연극제 희곡상, 백상예술대상 대상 작품상 희곡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서울극평가그룹 희곡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3년에 걸쳐 3차례 재공연됐다. 고문장면은 수정했지만 흥행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가 만들어지기까지는 6년의 기다림이 있었다. 82년부터 서울연극제 참가심사에 올려진 희곡은 번번이 탈락이었다. 당시를 회고하는 채윤일은 『한 작품으로 6번이나 참가 신청을 낸 건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현화는 심사위원의 성향을 꼬집는 채윤일의 말을 견제하며 『80년대 초에는 공연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라고 부연했다. 극중 계백장군 역의 배우가 『어떻게 질 게 뻔한 싸움터에 어정어정 걸어 들어가느냐. 현명한 장군이었다면 간신배들을 한칼에 먼저 베고 말았어야지 제 예편네나 죽이고 앉었어야 했느냐』하자 『그것이 군인정신이다』라는 연출. 쿠데타의 기운이 채 식지 않은 82년의 무대에 올려지기엔 무리한 대사였을까. 공교롭게도 초연은 87년 6·10민주화항쟁을 겪고 난 직후였다.

「불가불가」는 「카덴자」와 더불어 이현화에게 도도한 역사에서 개인의 책임이라는 화두를 던지기 시작한 작품이다. 본격적으로 연극공부를 한 적이 없어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했던 이현화와, 거침없이 창작극시리즈를 밀어붙인 채윤일. 이들은 폭력이 난무하고 선정적이고 파격적이어서 『무슨 연극이 이렇지?』라는 식의, 사실주의연극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로 화제와 논란을 몰고다녔다. 채윤일은 고도의 계산으로 알듯 모를듯 숨겨놓은 작가의 의도를 읽어냈다. 이현화는 채윤일을 『무대 위에 쓰는 시인』이라고 일컫고 채윤일은 이현화를 『전율을 느끼게 하는 유미주의자』라고 말하고 있다.<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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