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질병을 식량의 절대적 결핍, 즉 기아와 연관지어 이해한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그러나 음식물 가운데 어떤 특정 성분이 특별한 질병의 발생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불과 1900년 무렵이었다.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인 자바에서 일하던 네덜란드 의사 에이작만(1858―1930)은 자신이 진료하던 죄수들에게서 각기가 많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각기가 음식물, 특히 백미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백미 대신 현미를 죄수 환자들에게 먹임으로써 각기를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에이작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닭과 비둘기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즉 실험동물들에게 백미만 먹여 각기 증세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고, 다시 현미를 줌으로써 각기를 치료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로써 에이작만은 쌀 껍질 중의 어떤 성분이 각기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필수영양소」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그는 이렇게 각기의 정체와 치료법을 과학적으로 처음 규명했으며, 「결핍성 질환」을 실험적으로 유발하는 데 성공했다. 또 「비타민」의 개념도 도입했다. 그는 이같은 업적으로 1929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이제 각기는 의학적으로는 정체불명의 질병도 치료불능의 질병도 아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질병」이 됐다. 그러나 심한 기근에 시달리는 인구집단에서는 여전히 큰 위협이 되는 「현재의 질병」이기도 하다.<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의사학>황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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