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도 무더위가 맹위를 떨칠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다. 도시의 여름은 짜증 그 자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물은 끊임없이 열기를 뿜어 댄다. 차량 매연과 합쳐져 숨을 막히게 한다. 에어컨이 없는 집안에 있는 사람은 파김치가 된다. 선풍기를 돌려봐야 뜨거운 바람 뿐이다. 문을 열어 놓으려니 도둑이 무섭다. 감옥이 따로 없다. 너 나 없이 에어컨을 구입한다. 곳곳에서 과부하로 정전이 일어난다. 우리가 자초한 일들이다.짜증은 피서지를 가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쌓인 쓰레기더미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 나만 즐기고 가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들 때문이다. 다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을 욕하지만 쓰레기를 되가져가는 사람도 없다. 자치단체들이 하루 한번씩 피서지를 청소하는 크린업타임제를 실시한다고는 하나 중과부적이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인들의 작태는 목불인견이다. 지조도 신의도 없어 보인다. 말 바꾸기를 밥먹듯이 한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면서 교묘하게 조장한다. 줄서기 소식에는 귀를 씻어야 할 판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같은 행태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래저래 짜증을 더하는 올 여름이다.
이런 올 여름은 학창시절에 지냈던 산사를 더욱 생각나게 한다. 산사에는 시원한 바람과 맑은 물, 외로움과 여유가 있다. 당시야 공부를 위해 들어간 「강요된」상태여서 외로움이 더 많았다. 누군가가 모퉁이 길을 돌아올 것 같은 생각에 자주 눈길을 보내곤 했다.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워지면 한밤중에 마을로 내려가 술로 달랬다. 그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으면 산사로 오르는 길에 한바탕 고함을 질러 동네 개들을 모두 깨웠다. 산사에서의 시간은 「죽은 시간」이 많았다. 강박감에 공부흉내를 내며 타성화한 기대에 젖어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꿈을 꾸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산사가 그리워지는 것은 지난 시간들을 제대로 뒤돌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직장도 이웃도 공부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한번쯤 외로워질 필요가 있다. 「작금의 우리는 왜 이 모양인가」고 곱씹어 각자 제자리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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