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매인서류조작… 집하서 판매까지 독식/도매법인수수료 받고 공생·농안기금 유용도/감독 농림부·서울시선 3년간 비리적발 1건뿐/위법 묵인 의혹… 수사 확대산지에선 헐값, 시장에선 금값으로 농민들과 소비자를 모두 울린 농산물 가격의 왜곡은 경매비리와 감독기관의 묵인 때문이었다.
검찰의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내 경매 및 농수산물가격안정기금비리사건 수사결과에 따르면 중도매인은 산지에서 물건을 구입, 경매과정없이 도·소매상에게 직접 넘기는 방법으로 가격을 마음대로 정했다.
▷중도매인 비리◁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 제22조는 매점매석에 의한 가격조작을 막기 위해 생산자인 농민, 농산물을 수집해 도매시장법인에 넘기는 출하주, 농산물을 상장·경매하는 도매시장법인, 도·소매업자에게 농산물을 판매하는 중도매인 등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 겸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도매인들은 집하 경매 판매의 과정을 독식하면서 이러한 규정을 무시했다. 이들은 친·인척이나 직원들의 명의로 출하주 등록을 한 뒤 농산물을 위장출하하거나, 위탁매매 약정을 체결한 출하주의 물건을 받아 판매하고 이후 형식적으로 상장경매를 거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상장경매를 의무화한 농안법을 준수한 것처럼 속이기 위해 도매시장법인과 결탁, 마치 정상적인 경매를 거친 것처럼 장부를 조작했다.
적발된 33명의 중도매인들은 대부분 가락시장내 거상들로 산지 생산자로부터 밭떼기로 싼값에 사들인 마늘 대파 알타리무 등을 상장경매를 거치지 않고 시기를 조절해가며 소매상들에게 판매, 폭리를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매법인 비리◁
도매법인들은 서류를 조작해주는 대가로 상장수수료 명목의 부당이득을 챙기면서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이같은 공생관계는 가락동시장내 채소류 도매법인 6개중 농협을 제외한 5개업체 대표가 모두 구속된데서 잘 드러난다. 특히 일부 도매법인들은 농민들에게 지급해야 할 출하선도금과 대금결제금 등으로 정부가 법인당 연 1백억원 가량을 지원해주는 농수산물가격안정기금을 개인용도로 유용하거나 중도매인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생산자를 위한 자금이 밭떼기 매입자금으로 사용된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피해◁
이러한 비리구조에서 농안법의 근본취지인 완전경쟁에 따른 가격결정은 이뤄지지 않고 중도매인의 마음대로 농산물 가격이 결정됐다. 검찰조사결과 이처럼 불법유통된 농산물의 비상장거래액은 3백50억원에 이르고 도매시장법인의 부당이득만 20억원에 달한다.
특히 검찰은 『농림부가 오이 호박 등에 대한 상장경매 의무화 전후 가격을 조사한 결과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상장후가 상장전 보다 2.5배 가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혀 중도매인들이 불법 유통을 통해 챙긴 폭리규모를 짐작케 한다.
▷감독기관 묵인 의혹◁
검찰은 이같은 비리가 서울시 산하 가락동도매시장유통관리공사와 주무부서인 농림부의 묵인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농안법이 개정된 이후 3년여동안 이같은 비리가 자행된데다 상설운영되고 있는 공사의 비상장거래감시단의 감시실적은 단 1건에 불과한 점 등을 들고 있다. 또 도매법인에 대한 농안기금 배정 기준이 되는 상장물량 확인도 도매시장법인이 제출한 자료를 거의 그대로 인정(96%)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비리 원인◁
중도매인들은 농산물의 수집·판매 등 농산물의 모든 유통과정을 일괄 행사하면서 시장을 좌지우지해 오다 95년 1월부터 개정 농안법에 따라 상장경매를 거친 농산물의 판매만 할 수 있게 되면서 이익이 급감하자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여기에 도매법인들의 수수료 수익 챙기기와 상장경매실적에 따른 농안자금배정에 대한 감독기관의 직무유기가 가세했다. 또 일부 농민들은 농수산물 가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경매를 거쳐 출하하는 것보다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안정된 가격으로 중도매인에게 넘기는 것을 선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도매인들은 개정 농안법 시행 초기에 경매를 통할 경우 종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낙찰되도록 「작전」을 펴 농민들의 이탈을 막기도 했다.
▷수사◁
검찰은 감독기관의 비리묵인 의혹에 비춰볼 때 뇌물상납이 구조화해 있다고 보고 수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검찰은 벌써부터 관리감독 소홀만으로는 사법처리가 힘들다고 발뺌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94년 농안법 파동과 관련 유통비리에 대한 수사를 대대적으로 펼쳐 공무원의 비리를 밝혀내겠다고 장담했었으나 용두사미라는 비판을 받은 전력이 있다.<박일근 기자>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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