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은 많았지만 여당은 15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한 사람 택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처음에는 아홉마리의 용이 뜬다 하더니 뒤에는 일곱이 되었다가 한 마리는 막판에 떨어지고 결국 여섯마리의 격투끝에 이회창이라는 한 마리의 용이 자기 자리를 굳히고 승천을 위한 한판 승부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하겠다.이회창이라는 이가 누구인지 국민은 전혀 모르고 살았다. 그가 대법관을 지냈고, 법조계에서는 양심이 살아있는 깨끗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지만, 사실은 김영삼 대통령이 그를 감사원장으로 발탁하여 그의 평생소원이었다는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개혁과 사정의 오른팔로 쓰면서부터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회창의 손에 날쌘 사정의 칼을 쥐어주며 한동안 마음대로 휘두르게 한 뒤 김대통령은 그를 국무총리로 기용하였다. 한마디로 하자면 이회창씨를 우리사회의 유명인사로 만들어 준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청와대와 대통령의 독선내지는 독주에 대한 항의로 그가 사표를 던지고 총리직을 물러났을 때 「대쪽같은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런 연유로 하여 김대통령과는 「기약없는 이별」로 끝없이 멀어졌던 이회창씨가 무슨 사연 때문인지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과 독대를 하고 15대 총선에서 전국구 1번을 따내고 드디어 신한국당의 대표로 임명이 됐을 때 「무슨 대쪽이 저런가」라는 비난의 소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악전고투 끝에 그는 드디어 여당의 15대 대통령후보가 되었고 그의 주변에는 벌써부터 그를 「대통령 당선자」로 모시는 사람, 모시려는 사람이 줄을 지었다고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라의 대통령은 혁명이나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예외없이 여당에서 배출됐기 때문에 그를 이미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나 다름없는 어른으로 모시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이회창 후보는 「대쪽」같다는 그의 이미지가 더 큰 손상을 입지 않도록 말조심, 몸조심이나 하면서 비교적 조용한 나날을 한 5개월만 보내면 청와대로 이사를 가게 된다는 결론이다.
여당 후보의 앞길은 저렇게 탄탄대로인데 정권교체를 목메어 부르짖어온 야당의 후보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전혀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무슨 기적이 일어나려니 하며 어리석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양김이 따로따로 출마하면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양김 중 한 사람만 나가도 당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데, 양김은 대통령 될 생각을 아예 포기하고 두사람이 힘을 합해 밀어줄 수 있는 제3의 후보를 선택하여 국민 앞에 내놓으면 틀림없이 야권은 승리하고 정권의 교체는 야권 두 총재의 결단과 지혜로 이루어졌다고 역사에 기록될 터인데 어찌하여 두 총재에게는 그런 결단이 없는 것일까. 사람의 한 평생에 이런 멋진 기회가 다시 올 것 같지 않은데 왜 이런 좋은 찬스를 포착하여 역사의 위인으로 남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이제라도 늦지 않다. 정말 조국을 사랑한다면, 조국의 민주적 발전을 갈망한다면,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희구한다면, 여당에서 야당으로 진정 정권이 교체되기를 희망한다면, 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는 단둘이 만나서 15대 야권의 대통령후보를 물색해야 한다. 전라도 사람도 좋고 충청도 사람도 좋고 경상도 사람도 좋다. 이회창 후보보다 나은 사람이 야권에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두 총재가 눈을 크게 뜨고 찾으면 여당후보를 능가할 인물이 재야에 열 둘은 있을 것이니 그 중에서 한 사람만 고르면 될 것 아닌가. 쉬운 일을 어렵게 생각하면 안된다. 간단한 일을 복잡하게 만들면 잘못이다.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는 한국인이면 된다.
두 총재가 그 노력만 하면 여당이 아무리 자금을 뿌리며 관변단체와 관권을 다 동원해도 야권후보의 승리는 확실하다. 야권에 새 인물은 없는가.<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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