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북 인사마다 “식량달라” 절박/외빈숙소마저 단전·단수 실정/북 초청 목적은 경제제재 완화/군 입지강화·김정일체제 확고/개혁권유 ‘체제변혁’ 오해 발끈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 대사, 샘 넌 전 미 상원 군사위원장 등과 함께 20일부터 22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던 김석한(48) 변호사는 24일 『북한의 식량난은 매우 절박해 보였으나 김정일의 체제 장악력은 확고해 보였다』고 밝혔다. 중3 때 도미, 현재 미 워싱턴의 에이킨 검프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김변호사는 이날 본보와의 단독회견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북한이 식량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4자회담에 조속히 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대담=윤석민 기자
―레이니 전 대사 등의 방북은 비무장지대 총격사건과 내달 5일로 예정된 4자회담의 예비회담을 전후한 민감한 시기에 이뤄진 「거물」급의 방문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우선 이번 방북단의 성격부터 말씀해주시죠.
『순수 민간 차원의 개인적인 방문이었습니다. 비용도 모두 본인들이 부담했죠. 단지 북한의 초청을 받은후 미 국무부로부터 사전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또 귀국후 방북 활동 및 의견에 대해 보고하기로 했습니다. 이 보고는 한국정부에도 똑같이 하기로 했으며 22일 서울 도착 즉시 외무부를 방문해 전달했습니다』
―방북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현지 실태 파악과 함께 조속한 4자회담 참석과 고위급 남북 대화 재개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북한에 전한 메시지는 어떤 내용입니까.
『북한이 4자회담 등 남북간 긴장완화 및 신뢰 구축 방안에 성실히 응해야 현재의 식량난 등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 유사시 미국은 「의심의 여지 없이」 한국을 지원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혔습니다』
―북측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일면 수긍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체제 고수에 대한 경직된 사고는 확고해 보였습니다. 가령 농업을 비롯한 북한의 경제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니 즉각 「우리 체제는 끄떡없는데 무슨 소리냐」며 반발하더군요. 구조 개혁이라는 표현을 체제 변혁으로 오해한 것이지요. 이 때문에 우리 방북단사이에서는 그들의 체제내에서 변화를 유도해내는, 즉 중국식의 개혁·개방책을 펼쳐야 한다는 논의가 오갔습니다』
―김변호사께서 동행한 경위는.
『평소 레이니 전 대사 등과 가까웠는데 양측간에 있을 수 있는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한국인인 제가 해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동행케 됐습니다. 또 있을지도 모를 한국측의 오해를 불식시킨다는 점도 감안됐습니다』
―레이니 전 대사와 넌 전 의원 모두 조지아 출신인데다 통상전문가인 김변호사가 방문해 혹 애틀랜타를 본사로 한 코카콜라 등 미 기업의 북한 진출과 관련 있지 않느냐는 추측이 제기됐는데.
『전혀 아닙니다(웃음)』
―역시 조지아 출신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요청은 없었습니까.
『그런 특별한 요청은 없었습니다. 다만 종전 초청장이 유효한 만큼 언제든지 온다면 환영한다는 입장을 전해 들었습니다』
―북한이 왜 초청했다고 보십니까.
『식량난에 대한 지원과 함께 경제제재 및 테러지정국 해제 등을 미국측에 요구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평양 체류중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과 북한군 판문점 대표인 이찬복 중장 등을 만났는데 방북단의 격에 비해 홀대받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당초 김영주 부주석, 김영남 외교부장 등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던 날 북한이 짠 일정을 건네 받았습니다. 강 부부장은 김정일에 직보할 수 있는 실력자로 알고 있습니다. 이중장과의 만남은 우리가 북한 군부측 인사와의 면담을 요구해 이뤄졌습니다』
―이중장과의 대화중 양측간 대화 통로 개설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는데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요.
『서로의 의견 개진중 우발적인 충돌방지를 위해 의사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는데 견해를 같이 했습니다. 넌 전 의원은 이같은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4자회담 같은 대화의 장에 북한이 조속히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함께 소통 과정에 한국을 배제시켜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우리는 협상을 하러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제안도 한 것이 없습니다』
―북한의 식량난은 어떻던가요.
『북한 인사들은 접촉때마다 식량 지원문제를 거론했습니다. 100만톤의 식량을 9월까지 지원해 달라는 등 절박해 보였습니다. 평양 시민들도 허름해 보이고 거리에는 개 한마리 안보였습니다. 외빈전용 숙소에서 머물렀는데 이 시설도 매우 낡아 물이 안나오는가 하면 몇차례 단전되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접은 잘 받으셨습니까.
『융숭한 대접과 함께 풍족한 음식을 제공받았습니다. 하지만 밖의 굶주린 주민들을 생각하니 우리 모두 목이 메어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마지막 만찬장에서 레이니 전 대사가 이 점을 지적하더군요』
―김정일의 권력 승계 시기에 대해 들으신 것이 있습니까.
『언급이 전혀 없었지만 그의 체제 장악력은 확고해 보였습니다. 다만 우리(방북단)끼리는 그의 권력 승계가 9, 10월께 있지 않을까 추론했습니다』
―어떤 경로로 방북하셨습니까.
『미군용기편으로 일본에서 동해를 거쳐 청진 원산쪽으로 내려오다 평양 순천비행장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날씨가 청명해 북한 산하를 내려다 볼 수 있었는데 모두 민둥산으로 황폐한 모습이었습니다. 나올 때는 일단 동해로 빠졌다가 서울로 왔습니다』
―북한 방문을 마친 소감을 말씀해주시죠.
『북한의 상황이 너무 심각한 것 같습니다. 북한이 코너에 몰릴 경우 필사적이 되는만큼 도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군부의 입지가 상당히 강해졌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우리가 원조를 계속하면서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끌어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방북과 관련, 한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레이니 전 대사와 같이 한국에 깊은 애정을 가진 분들이 한반도 문제를 놓고 많은 걱정을 하며 애쓰는 순수한 의도에 대해 다소 의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안쓰럽습니다. 고마워할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할줄도 아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한미 양국이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해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해의 소지는 미국이 대한 정책에 북한을 카드로 활용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도 기인한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절대 기우입니다.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 등 통상관련 부서가 대한 압력을 높일라치면 국무부 국방부 등이 안보상황 및 양국간 우호관계를 들어 「톤다운」시키는 것이 현실입니다』
□약력
▲49년 서울 출생
▲64년 휘문중 3년때 도미
▲길포드대, 컬럼비아대 대학원 졸업(국제정 치학)
▲조지타운대 로스쿨 졸업
▲90년∼현재 에이킨 검프 & 스트라우스 법률 사무소 선임변호사
▲현 삼성그룹, 포항제철, 한국무역협회, 주 미 한국대사관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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