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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는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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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는 대중문화

입력
1997.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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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기’ 위한 매가 아니라 ‘살리기’ 위한 매를 들라/청소년보호법 등 보수바람속에 발생한 학교폭력·빨간마후라/“환부는 싹 도려내야” 당국은 칼날을 꺼냈고…/원칙없는 기준과 여론몰이 ‘냄비식 규제’로 사회타락의 주범이라는 원죄를 몽땅 뒤집어쓴 대중문화는 억울하다?이달 들어 대중문화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예사롭지가 않다.

대중문화가 이처럼 몰매를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으론 이유있는 매질일 것이다. 「갈 데까지 갔다」는 개탄이 나오고 이번 기회에 환부를 싹 도려내자는 강경론도 일고 있다. 국민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매를 든 당국의 서슬이 어느 때보다 퍼렇고 단호하다. 그러나 곳곳에 멍이 들었지만 아프다는 이야기도 못하고 매맞는 대중문화는 억울할지 모른다. 그 억울함에는 타당성도 있을 것이다.

우선, 윤리·도덕의 타락을 가져온 원죄를 몽땅 뒤집어 쓴 느낌이다. 우리 사회 모든 범죄의 교사범인양 매도당하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다. 공동책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정의도 없었고, 정치도 추했고…, 청소년을 범죄의 현장으로 내몬 이유도 이루 다 열거 할 수 없이 많은 데 말이다.

둘째, 매를 치는 기준이 수시로 변한다. 어제의 칭찬이 오늘 아침에는 꾸중으로 돌변한다. 영화인들은 특히 가슴이 더 아프다. 올 상반기 최대 흥행작인 다큐멘터리 「쇼킹 아시아」, 성전환수술을 받는 게이의 성기를 피범벅 속에서 절단하는 장면 등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하반기에는 동성애 때문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왕자웨이(왕가위)의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수입금지됐다. 심의기준이 오락가락하는 느낌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셋째, 윤리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 때마다 당국은 무조건 단호하고 대중문화는 몰매의 대상이 된다. 이른바 「냄비식 규제」가 많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빨간 마후라」가 국민에게 충격을 주면서 대중문화의 규제가 강화되는 분위기로 흐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퇴폐 음란 폭력은 단호히 규제돼야 한다. 그러나 그 기준에 원칙이 있어야 하고 적용에는 탄력도 있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화는 윽박지르고 야단쳐서 키우는 게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겁먹은 문화는 기형으로 자라거나 성장을 멈춘다. 훌륭한 문화를 키우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권오현 기자>

□전문가 진단

◎김상식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심의 이중잣대는 오해

심의가 갑자기 강화됐다는 지적은 어불성설이다. 공륜은 늘 있어온 기준에 의해 심의위원들이 일관성있게 작업을 해오고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경우는 많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다. 왕자웨이감독을 모르는 심의위원이 있겠는가? 하지만 충분한 토의 끝에 예전의 동성애 영화와는 다르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나쁜영화」는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의 장면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등급외 판정이 나왔다. 우리는 언제나 같은 기준에 의해 심의를 해왔다. 이번에는 제반 상황과 때를 같이 했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지만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심의기준이 잘못됐다면 더 폭넓은 여론 수렴과 논의를 거쳐 개선해야 할 것이다.

◎김창남 만화평론가협회장/만화계 처벌은 ‘본보기’

상식 밖의 일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과 신화적 줄거리를 만화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저질 만화와 같은 취급을 한 것이다. 사회 전반의 보수화 바람을 타고 일진회 등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청소년문제에 대해 정부가 뭔가 행동을 취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조치에 불과하다. 국내 만화계의 대표격인 이현세씨를 대상으로 한 것 또한 다른 분야에 비해 조직화하지 않은 만화계에 대한 「본보기」라는 의도가 짙다. 청소년 유해만화 처벌이 그렇게 시급하다면 그 주범인 일본만화에 대해 이제까지 한번도 없었던 정책적 대응을 세우는 것이 마땅한 순서이다.

◎이홍우 MBC 예능제작국 PD/규제보다 자율이 우선

「빨간 마후라」 등 청소년 문제가 사회화하자 간부들이 논의 끝에 연예인의 복장 등에 대한 규제 조치를 내렸다. 방송이 공중매체이고 특히 청소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만큼 다른 분야보다 최소한의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권력에 의한 획일적인 조치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의 자율적인 노력이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일벌백계성 처벌 곤란

데스메탈그룹의 앨범 「카니발 콥스」를 심의를 받지 않고 유통시킨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구속수사는 지나친 반응이다. 데스 메탈이라는 특정 장르의 표현주의 미학은 별개로 하더라도 그 음악을 즐길만한 계층은 국내에 5,000여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었다고 타인에게 유해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기우다. 청소년 문제와 관련된 일벌백계성 처벌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보다는 파행적 유통을 유발한 팝 심의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무조건 막기 보다는 대중의 자율적인 정화를 장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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