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물이 쉴새없이 떨어지는 청다락골/원시림의 벽계구곡 산너머에 서울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물에도 여러가지 소리가 있다.
때로는 진군하는 군대의 발걸음처럼 막힘이 없으며 때로는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처럼 가르릉거리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어떤 때는 귓가에서 속삭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되기도 하고 어떤때는 짜증난 아기처럼 쟁알거린다. 청다락골의 물소리는 어린아이들의 합창소리다. 합창 중에서도 앞뒤로 메기고 받는 노래다. 앞에서 한소절 하면 뒤에서 후렴으로 받친다. 여러가지 소리가 한데 얽혀 있으면서도 끊임이 없다.
청다락골. 푸른 물이 쉴 새 없이 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기 가평군 설악면 곡달산 기슭을 돌아나와 양평군 서종면 벽계 구곡으로 넘어가는 계곡이다. 길이는 12㎞, 내를 끼고 산길을 걸으면 3시간이다. 그 시작은 용문산이고 끝은 수입리를 거쳐 북한강에 이른다.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길이다. 하루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도 계곡은 완전히 별천지다. 앞뒤를 통방산과 곡달산이 가로막아 문명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구불구불 산길은 차 두대가 마주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고 드문드문 서 있는 집도 나무기둥에 흙벽을 발라 세운 옛날 모습 뿐이다. 외로 난 길을 걷다 보면 강원도 외진 산골에라도 들어온 듯하다. 말 그대로 오지다. 오직 산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만이 그 폭과 깊이로 사람의 마음을 평정한다.
청다락골에서 8년째 살고 있는 서양화가 심문섭씨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산자락을 휘감는 물줄기가 태극모양이고 그것도 두개가 연달아 있는 쌍태극의 형상이 나타난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풍수지리적으로도 기세가 상승하는 곳이라고 한다.
물 안으로 들어가 귀 기울이면 물가에서 듣던 소리와는 또 다르다. 반갑다고 왁왁대는 것도 같다.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못보던 것들이 눈에 띈다. 바위 가장자리에 뭔가 작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다슬기다. 도대체 얼마만에 보는 살아있는 다슬기인지. 아직도 물이 맑다는 증거다. 좀 더 들여다 보면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유유히 물속을 노닌다. 놀러온 아이들이 물안경을 뒤집어 쓰고 계속해서 다슬기를 주워올린다. 『엄마 이거봐』하고 자랑스레 손을 내미는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옛날에 정말 맛있게 먹었지』하고 감상적인 얼굴이 된다.
지난 주말 회원들과 함께 청다락골로 답사를 다녀온 국토순례회 옛돌의 조승열 회장은 『다슬기 잡기에 싫증이 나면 산길 트레킹을 즐겨보라』고 권한다. 시내와 맞닿아 있는 나무 사이로 몇발만 디뎌도 울창한 숲이다. 그렇게 따갑던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길도 제대로 없고 갑자기 뱀이 나타나 놀래키기도 한다.
하지만 흐르는 땀을 씻으며 바로 가까이서 콸콸 대는 물소리를 들으며 마냥 걷는 느낌만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 이대로 끝없이 걸어가면 숨겨진 산속의 다른 세상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공연한 설렘.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 사이로 삐죽 솟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청다락골과 벽계구곡의 경계가 되는 일주암이다. 키가 20m나 된다지, 아마. 과연 선비들이 흠모했을만한 기암이다.
벽계구곡을 타고 계속 가다보면 노문리 마을회관을 지나 200년된 고택과 노산사가 나온다. 조선말의 유학자였던 화서 이항로 선생의 생가와 그를 모신 사당이다. 선생을 따르던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어수선한 나라일을 걱정했다고 한다. 지금은 선생의 5대 외손인 장기덕 옹이 상투까지 튼 옛모습 그대로 외지인에게 설명해주곤 한다.
노산사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청다락골과 벽계구곡 또한 아름답기 이를데 없다. 산 너머에 있다는 서울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가만 귀를 열어보니 물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매미소리가 한없이 평화롭다. 구름 한점 없는 머리 위에는 벌써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 여름이 깊어가고 있다.
◎묵어 가려면/조선말 이항로 선생 생가 등/민박집·맛있는 집 많아
경기 가평군 청다락골과 양평군 벽계구곡은 당일에 다녀오기에 무리는 없다. 그러나 역시 여행이라면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물면서 즐기는 게 제맛이다.
청다락골에서 가장 좋은 곳은 이항로 선생의 생가(0338―71―1181). 후손인 이화복씨가 주인이다. 모두 6칸이지만 창호지 문을 들어 올리면 커다란 방이 된다. 나무마루에 앉아 부채로 산바람을 부치는 운치가 남다르다. 개량식 부엌에서 취사도 가능하다. 그밖에는 벽계구곡 끝 동네에서 4대째 살며 운영하고 있는 오복식당(0338―73―6472)이나 물레방아(0338―73―0010) 등에서 민박을 할 수 있다. 된장찌개 등 간단한 음식이 가능하고 토종닭 백숙을 잘한다. 오복식당 뒷집인 심문섭씨네에서는 말린 칡과 대추, 인동덩굴로 만든 냉차가 별미다. 지나는 길에 청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하루 이상 지내는데는 수입리까지 나가보는 것이 좋다. 1박이라면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2박이라면 벽계구곡에서 나와 둘째날 낮 시간을 보내고 근처 서울상회(0338―73―6368) 등에서 민박하거나 양수리까지 나오면 다음날 올라오기에도 편하다.
「물이 들어온다」는 뜻의 수입리는 옛부터 나루터로 유명하다. 지금도 유람선을 닮은 나룻배가 왕복 20분 거리의 금남유원지를 오간다.
물이 많은 만큼 놀거리도 많다. 수입리에서 양수리까지는 곳곳에 수상레포츠센터들이 있다. 수상스키, 제트스키, 바나나 보트 등을 즐길 수 있고 초보자는 강습도 해준다.
돌아가는 길에는 다산 마을을 권할만하다. 팔당댐에서 양수리 쪽으로 3㎞쯤 가다 철교 밑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좁은 길을 타고 고개를 넘으면 너른 팔당호와 다산 정약용이 태어난 마현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33칸의 여유당과 다산의 8대손이 직접 관리하는 기념관(0346―567―9300)이 명소. 강가의 아담한 카페들은 지친 발을 쉬어가기에 좋다.
◎가는 길/양수리→수입리→벽계구곡 코스가 편리/출발·귀가 서둘러야 길에서 시간허비 안해
청다락골과 벽계구곡은 서울에서 불과 2시간 거리다. 그러나 제시간에 오고 가기란 쉽지 않다.
갈 때는 아침 일찍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가는 길은 두 가지다. 경춘국도를 타고 가다 신청평대교를 건너 설악면으로 좌회전 해 솔고개 쉼터에서 오른쪽 샛길로 접어든다. 조금 가면 두갈래 길이 나오는데 아랫쪽 포장도로를 타야한다. 4㎞정도 좁은 산길을 타면 배치고개를 지나 아랫쪽 다락재와 전말 마을에서 차를 세운다. 트레킹 하기에는 여기에서 노문리 벽계마을 6㎞정도가 가장 좋다. 곡달산쪽으로는 물살이 험해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다른 방법은 양수리에서 수입리로 들어가 노문마을을 지나 벽계구곡까지 들어가는 길이다. 이편이 주차나 숙박에 편리하다. 청평쪽에서 내려갔다면 올라올 때는 양수리를 권할만하다. 역시 늦어도 4시 전에는 서둘러 떠나야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양수리 강 저편 도로를 타고 오다 차가 막히면 문호리 3거리에서 수릉리쪽으로 좌회전해보자. 숨은 길이 있다. 작은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면 벗고개와 부용리를 지나 용담리로 빠져나온다. 거리상으로 다소 돌아가지만 한참 정체될 때는 1시간 30분정도 단축할 수 있다.<가평=김지영 기자>가평=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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