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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밑창/성석제 소설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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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밑창/성석제 소설가(1000자 춘추)

입력
1997.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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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구두가게 앞을 지나다 진열대 한켠에 놓인 고동색 구두를 보았다. 좋은 가죽에 가볍고 튼튼해 보이는 것이 정말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그 구두를 살 여유가 없었다. 그는 매일 구두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그 구두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몇 달이 흐른 뒤, 구두가게 주인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몇십년 동안 장사를 해왔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꼭 팔아야 겠다, 돈은 되는 대로 받을 테니 구두를 가져가라고 했다. 그때 그에게는 쌀과 연탄을 사는 데 쓸 돈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구두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구두를 신고 나오면서 그는 날아갈 듯한 행복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 구두를 신고 다니는 동안에도 그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크게 나빠진 것도 없었다.

세월이 흘렀다. 구두는 그가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간수하는 덕분에 늘 새것 같았다. 하지만 밑창이 닳아서 수선을 해야 했다. 그는 밑창을 갈려고 자신이 구두를 샀던 가게로 갔다.

구두가게 주인은 한참 만에야 그의 구두를 기억해냈다. 그 동안 유행이 바뀌어서 그 구두에 맞는 밑창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주인은 성의를 다해서 밑창을 구해 직접 달아주었다. 한사코 수선비를 사양하는 구두가게 주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마저 감돌았다. 새 밑창을 단 구두를 신고 공짜로 얻은 여분의 밑창까지 들고 밖으로 나온 그 역시 구두가게 주인처럼 행복해야 했다. 그런데 그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 구두 밑창을 몇 번 더 갈고나면 내 인생이 끝나겠구나」.

그가 그 자리에서 구두를 벗어던지고 새 인생을 찾아갔을까. 아니면 또다시 그 구두 밑창을 갈았을까. 그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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