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40대 남자의 일상으로부터의 일탈/마흔다섯의 남자와 직장동료인 32세 미혼녀/그리고 이상한 사내 셋이 풀어가는 이야기소설가 구효서(40)씨가 「비밀의 문」 이후 1년여만에 신작 장편 「남자의 서쪽」(문학동네 발행)을 발표했다. 감추어진 생의 이면에 집착하는 언어, 여주인공의 음뇨, 이국풍정과 헤이즐넛 커피, 바흐의 음악 등을 섞어놓은 특유의 감성적 묘사는 구씨가 「비밀의 문」에서 보여주었던 밀교적 세계를 다시 연상케 한다.
이야기는 남자의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에 관한 것이다.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던 마흔다섯의 사내 박재준. 그는 베트남 출장길에서 자신보다 한 살 많은 한 한국인 사내를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박이 다니는 회사 과장으로 「서늘한 아름다움」을 가진 32살의 미혼녀 허경주, 박은 그녀를 잘 모르지만 허경주는 박의 과거까지 알고 있고, 어느날 허경주의 유혹에 박은 그녀와 관계를 맺게 된다.
베트남의 한국인 사내는 자신의 예금을 모두 털어 베트남으로 와 통킹만의 절경 하롱베이에서 유람선을 사 운영하면서 그냥 자연을 응시하며 사는 인물이다. 그가 박에게 털어놓았던 이야기는 유년의 기억이다. 자신이 열여섯살 무렵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하던 수리조합장이었던 중년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여자와 술에 빠지고 「붉은 신장」이라는 병에 걸려 어머니를 성적으로 학대하다 죽는다. 고향의 황톳빛 붉은 산과 그곳을 배꽃처럼 하얗게 뒤덮던 만장행렬…. 박과 관계를 지속하던 허경주는 『나 당신 아이 갖고 싶어』라는 말로 박을 혼란에 빠뜨리는데, 박은 예금을 털어 베트남으로 떠날 생각을 한다.
실상 베트남의 그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고, 박재준 바로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갈수록 우연과 불연속적인 것들에만 눈이 커지고, 지금까지 움켜쥐었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하찮게 여겨지면서 그런 나에게 동조할 만한 남자 하나를 만들고 싶었다』고 박재준을 말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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