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때 동·서인으로 갈라진후 300년 당쟁사 인물중심 짚어/당파가 공존추구땐 긍정기능/독존 추구로 바뀌면 부정기능「송자」. 명지대 총장 이름이 아니다. 조선 효종∼숙종 때 당대의 거유 송시열(1607∼1689년)을 극존칭인 자자를 붙여 일컫는 말이다. 우리 역사상 공자와 맹자같은 성현에게 붙이는 자자가 붙은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그러나 그의 생존 당시에도 그를 송자라고 떠받든 것은 기호지방을 중심으로 한 노론뿐이었다. 반대파 남인들은 자기 집 개 이름을 「시열」이라고 했을 만큼 영남지방에서는 사람 취급도 못받았다. 송시열에 대한 평가는 왜 이처럼 극과 극을 달리게 됐을까. 당쟁의 산물이었다.
일본인학자들은 『조선인의 피에는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 있어 당파싸움이 계속됐으며 이는 결코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떠들어대면서 당쟁을 우리 민족의 고질이자 조선망국의 원인이라고 왜곡하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식민사관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이 해묵은 질문에 숭실대 사학과 강사 이덕일(36)씨가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석필 발행, 1만원)로 답했다.
이 책은 조선건국 이후 훈구파에 의해 정치진출이 막혔던 사림파가 70여년만에 정권을 잡고 나서 선조 때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진 후 300여년간 계속된 당쟁을 인물중심으로 짚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이황, 이이같은 「위인」의 행적이 흥미롭게 부각된다. 특히 자연을 벗삼아 청빈한 삶을 즐기겠다고 읊조리던 조선조 정치가들의 상당수가 요즘 말로 하면 수십, 수백억대 의 부자였으며 그 기득권을 지키려는 처절한 밥그릇 싸움이 바로 당쟁이었다는 냉혹한 진실이 속속 드러난다.
필자는 그러나 11세기 중엽 송나라때 붕당정치와 17세기 후반 영국 정당정치의 사례를 분석한 뒤 『(당파) 정치체제는 사회구조의 산물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당쟁은 당파끼리 공존을 추구할 때는 긍정적인 기능을 많이 하다가 독존(단독집권)을 추구하면서 부정적인 기능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순조 이후 한 가문이 국정을 좌지우지한 세도정치에서 보듯, 특정 정당과 특정 지역을 배제하는 식의 독존정치는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나라와 민족 전체를 파멸시킵니다』
이 책은 특히 당파계보와 주요인물의 행적 등 관련자료가 흥미롭다. 대중용 역사서지만 진지함과 역사의식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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