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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승리’ 운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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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승리’ 운도 따랐다

입력
1997.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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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한보·김현철 파문에 대표프리미엄/온산 와병 정발협 내분 이어져 반사이익까지「능력뿐만 아니라 운이 따라야 뜻을 이룬다」는 말처럼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의 경선승리 배경에는 무시할 수 없는 외생변수도 많았다.

이후보 자신의 추진력도 중요했지만 돌발사건 등 외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외생변수로는 무엇보다 금년 1, 2월에 잇따라 터진 노동법파동과 한보사태, 나아가 김현철씨 파문을 들 수 있다. 이같은 대형 사건들로 벼랑에 몰린 김영삼 대통령이 탈출구를 모색하기 위해 이후보에게 당대표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보는 지난 해 1월 입당한 뒤 4·11총선 선거대책위의장을 맡았으나 지난해 연말까지 확고한 자리를 굳히지는 못했었다. 김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민주계 인사들이 「이회창 불가론」을 주장하고 있었고, 여권일각에서는 이홍구 당시 대표를 「대통령후보」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노동법파동과 한보사태로 이홍구 의원은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결국 대권가도에서 낙마하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대표자리는 이후보가 아닌 다른 인사에게 넘어가게 돼 있었다. 김대통령은 당초 이한동 고문을 당대표로 내정했으나 이고문이 「경선주자는 대표가 될 수 없다」는 방침을 수용하지 않은데다 김현철씨 국정개입 파문이 확산되면서 「위기관리카드」대안으로 이후보가 급격히 부상하게 됐다.

게다가 민주계가 대표로 밀고있던 최형우 고문이 지난 3월11일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지면서 이회창 후보는 3월13일 대표자리에 오르게 된다. 민주계 관계자들은 『최고문이 쓰러지지 않았다면 이후보의 세몰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최고문의 와병을 경선의 주요변수로 꼽고있다.

그 당시 최고문은 이수성 고문을 민주계의 대안으로 여기고 대세몰이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보는 대표취임이후 「대표직 프리미엄」을 활용, 「이회창 대세론」을 확산시켰다.

그는 지구당위원장 100여명 이상의 지지를 확보한 뒤 7월1일 대표직을 사퇴하면서 다른 주자들의 대표직 사퇴요구도 잠재웠다. 범민주계 모임인 정치발전협의회가 단일후보를 추대하지 못하고 내분에 휩싸인 것도 이후보에게는 반사이익을 안겨주었다.

6월 TV토론을 거치면서 국민지지도에서 이인제 경기도지사는 급부상했고, 이수성 고문이 주춤거리면서 정발협의 후보추대계획은 무산됐다. 또 7월초에 청와대의 정발협 「활동중단」지시도 이후보의 대세론에 힘을 실어주었다.<김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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