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부도 경기 회복세에도 찬물/“선의의 조정자역 개입 필요” 지적「기아사태」로 회복세를 보이던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으나 정부는 『개별기업에 관여할 수 없다』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기아그룹에 대한 부도유예 결정이후 ▲금리상승 ▲증시혼란 ▲해외차입여건 악화 등 자금시장의 혼란상이 확산되고 있는데다 금융기관들은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채 우왕좌왕하고 있어 금융시장이 「무정부상태」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금융당국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기아그룹에 채권을 가진 금융기관은 5월말 현재 1백44개에 달한다. 은행권에서만 국내은행 29개와 국내진출 외국은행지점 11개가 모두 5조3천8백45억원을 대출해 주었다. 또 자본력이 약한 리스 카드 할부금융사까지 대거 기아대출에 참여해 금융기관 전체의 부실화가 예상되고 있다.
이와함께 기아사태는 한보 삼미 진로 대농 등 이미 부도처리됐거나 부도유예된 그룹에서 입은 금융기관의 상처를 곪아 터지게 했다. 금융권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실기업의 정리가 정부의 방관자적 태도 등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부실을 떠안은 금융기관들은 더욱 움츠러들고 있으며 아시아자동차의 대형 협력업체가 부도를 내는 등 자금시장이 급랭하고 있다.
더구나 기아문제의 해결은 장기화할 조짐이다. 「임자」 있는 한보철강의 1차 공개경쟁입찰은 신청자가 하나도 없어 자동유찰됐고 우성건설도 인수를 추진했던 한일그룹과 은행단의 이견으로 인수가 백지화한 마당에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기아의 경우 단시일내 처리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부실기업 정리의 장기화는 금융과 산업은 물론 국가경제 자체를 부실화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정부는 『금융시장의 질서가 위협받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면서도 『개별기업에 대해 관여할 수는 없다』고 중립적인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금융계 인사는 이에 대해 『정부의 수단이 없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지만 부실기업 처리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자세는 책임회피나 다름없다』라고 꼬집었다. 기아그룹 채권은행단 관계자는 『기아그룹매출액이 국민총생산(GNP)의 3%를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할 때 금융기관장들이 기아그룹 처리를 단독 결정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제는 정부가 「선의의 조정자」로서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은행권 일각에서 『정부가 1백% 출자한 산업은행도 기아그룹에 1조4천억원가량을 대출해 주었다』며 정부의 책임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은 『기아사태를 잘못 관리하면 국가신용도 급락 등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며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막고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범위에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기관에 대해 재정으로 지원하거나 기아의 자구노력시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지원만큼은 거들어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계도 기아사태를 계기로 부실기업 정리에 따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그룹 임원은 『경제팀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실제 이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는 마련하지 못했다』며 『실물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여다보지 않은채 미래구상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시장경제주의」와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정작 증권거래법 세법은 이에 따라가지 못해 구조조정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정희경 기자>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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