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10% 높이려 도서구입 10% 삭감/어찌 이런 발상으로 학문 내실을 바라랴외국의 대학에 와서 지내다 보면 언제나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 대학의 처참한 상황이다.
대학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대학도 사회 안의 존재인만큼, 대학의 이상도 그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가치나 그 사회의 경제적·사회적 구조나 대학에 대하여 사람들이 거는 기대 등등 여러가지의 변수에 의하여 정하여진다. 또 그것은 하나의 사회에서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의 유일한 국립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과 요즈음의 대학을 비교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교육법 제108조를 보면, 대학은 국가와 인류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문의 심오한 이론과 그 광범하고 정치한 응용방법을 교수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고 있다. 물론 대학의 목적이 법률의 조항 하나에 의하여 정하여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마도 이러한 목적 설정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납득될 만하다고 여겨진다. 결국 대학은 학문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다 더하여 이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또 이를 통하여 지도적 인격을 담아 나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문의 연구에는 막대한 자원의 투입이 필요하다. 특히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지식과 설명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발전하여 가는 오늘날에는 그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으로도 엄청난 설비와 노력이 요구된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의 주요한 국가가 나라의 온 힘을 기울여서 수행하여야 하는 전쟁을 겪지 않고 지내고 있는 것이 벌써 50년이 넘었다. 아마 그들의 역사에서 이러한 태평성대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 나라는 전에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학문연구도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 덧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대신, 이제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밤을 지새우며 연구에 몰두하고 새로운 인식과 발전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단 궤도에 오른 지적 노력들이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그 전개에 가속도가 붙어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을 새롭게 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얼마전부터 종전보다 훨씬 세분된 분야의 전문학술잡지가 속속 창간되어 새로운 성과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서 증명될 수 있다. 이러한 평화의 값진 열매들은 그 평화가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끝을 모르게 쏟아져 나올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지적 생산에 있어서의 우리의 위치이다. 이를 떠맡고 나아가야할 우리의 대학은 진정으로 한심한 처지에 놓여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예를 들면, 교수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인적, 물적인 설비는 교수가 아무런 연구도 하지 아니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서 마련되어 있는데 불과하다고 하여도 하등 과장이 아니다. 관련되는 논문이나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보아도 없는 경우가 있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 하긴 서울대학교 전체의 1년동안의 도서구입비가 10억원에도 미치지 않으며, 이를 대학별, 과별로 쪼개다 보면 예를 들어 법대의 경우는 2,00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이다. 게다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예산당국은 경쟁력 10% 높이기의 취지에 따라 금년도의 도서구입예산을 기계적으로 10% 삭감하는 몰지각한 일을 벌였다고 한다.
이제 우리의 대학은 덩치만 크고 내실이 별로 없는 불량품제조업체가 되었다. 그러니 대학을 나와서도 연구자가 되려면 당연히 외국에 유학가서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는 학생들 사이의 인식을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고서는 국민과 시대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는 나라를 식민지라는 이름 이외의 어떠한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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