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8위의 기아그룹이 「부도유예」 결정으로 좌초하던 날 강경식 경제부총리의 일성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채권은행단에 (기아의 운명이) 달려있다. 정부가 갖고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시장경제주의의 신봉자로 금융개혁을 밀어부치고 있는 그로서는 다른 답변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 그를 부총리로 입각시킨게 한보사태였던 만큼 그 해결책인 금융개혁은 강부총리에게 피할 수 없는 과제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금융개혁을 비웃기라도 하듯 진로 대농 한신공영에 이어 기아그룹까지 한 달에 한 개꼴로 유수한 대기업들이 쓰러지고 있다. 당국의 특별검사 엄포에도 불구하고 루머만 나돌면 갑자기 대출금을 회수해 버리는 금융계의 「패거리」 여신관행은 변하지 않고 있다. 금융이 기업을 죽이고 기업은 금융을 고사시키는 악순환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금융개혁 작업은 어떤가. 업무영역을 헐고 경쟁을 촉진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거창한 취지는 실종된 채 금융감독권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뿐이다. 금융개혁은 이제 한국은행의 독립 쯤으로 전락했다.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마저도 연내에 실현될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부실기업이 쓰러지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도 과거처럼 적극적으로 소방수 역할을 할 입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놔야 하는가. 지금 금융계와 재계는 흉흉하다. 진로와 대농이 부도유예됐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벌써 부도유예리스트가 나돌고 있다.
금융개혁은 누구를 위한 개혁이고 시장주의는 무엇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가. 시장이 없는데도 시장주의가 필요한가. 현 경제팀장은 수혈을 기다리며 신음하는 중환자를 병실에 방치한 채 연구실에서 첨단의료기술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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