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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의 수필집 ‘아무도 섬으로 오라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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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의 수필집 ‘아무도 섬으로 오라고 하지 않았다’

입력
1997.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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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처럼 다가오는 섬·섬·섬/50여년간 1,000여개의 섬 떠돌며 시작활동/이번엔 그동안의 에피소드·스케치 함께 엮어그는 섬을 참 많이도 떠돌았다. 아무도 오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그는 섬으로 갔다. 50여년 동안 우리나라 전체 섬의 3분의 1 가까운 1,000여개의 섬을 찾아다니며 그 여정을 시로 써 온 노시인 이생진(68)씨. 「그리운 바다 성산포」 등 19권의 시집을 낸 그가 스무번째 책으로 수필집 「아무도 섬으로 오라고 하지 않았다」(작가정신 발행)를 냈다. 『내 가슴에서 시가 다 끝나는 날 산문집 하나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직 시가 남아 있는 마당에 산문집을 내는 것이 어쩐지 시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의 산문 한편 한편도 시처럼 맑다. 섬으로 떠나는 이유, 젊은이에게 섬으로 홀로 떠나볼 것을 강권하다시피 하며 고독의 자유를 누려보라는 충고, 섬에서 만난 사물―도요새 바다직박구리 등 물새와 무덤에 핀 엉겅퀴, 하찮은 벌레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담은 짧은 글들이 직접 스케치한 그림들과 어우러져 책은 마치 한 권의 아름다운 시화집이다.

왜 그는 섬으로 떠나는 것일까. 군산 앞바다에 깔린 고군산열도 중 하나인 대장도를 갔다가 그는 팔순 할머니를 만났다. 『어디로 가시유』 『저 끝 말도로 갑니다』 『어이구 거긴 가 봐야 하늘과 바다 뿐인데』

오히려 그래서 그는 섬으로 간다. 하늘과 바다밖에 없는 곳에서 누리는 고독과 자유, 그것이 이씨가 앉은 자리를 버티지 못하고 섬으로 섬으로 떠나는 이유이다. 충남 서산 태생인 그는 해방 직후 중3 때부터 안면도를 시작으로 섬의 순례에 나섰다. 거의 혼잣길이었다. 젊은 시절의 그에게 섬은 「딴 곳에서 벌어지는 세계」였다.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 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바다의 오후」 전문).

에피소드도 많다. 67년 당시 일주일에 한번밖에 배가 다니지 않던 홍도. 그는 늘 이름 모르는 한 천주교 신부와 열시간의 항해 동안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홍도로 갔다. 그곳 잔디밭에 널린 멸치를 안주삼아 맥주를 들이키며 하늘을 보고 시를 썼다. 이제 그 잔디밭은 시멘트로 덮였다. 격세지감… 그는 요즘은 겨울에만, 동백꽃 예쁜 겨울에만 홍도로 간다.

그는 언제부턴가 섬에서 무덤을 보았다.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덤들. 거기에 피어나는 민들레와 할미꽃과 엉겅퀴에서 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 곧 시를 쓰는 시간이다. 『무덤은 항상 산 자에게, 바람과 파도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자와의 교류, 이것이야말로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이씨는 말했다.

평생 교직에 몸담아 온 이씨는 93년 서울 보성중 교사를 마지막으로 퇴직했다. 정년은 멀었지만 여유있게 섬을 가 보고 싶어서다. 일본 중국 인도 호주 뉴질랜드 유럽의 섬들도 많이 가 보았지만 우리 피가 흐르는 한국의 섬만한 곳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에서는 시가 써지지 않았다.

2남1녀가 다 출가하고 부인(63)만 지키는 집을 떠나 그는 요즘도 한 달에 일주일 가까이 섬에서 머문다. 올 여름 그는 흑산도에서 4시간여 걸리는 만재도로 떠나볼 계획이다. 자칭 「걸어다니는 물고기」인 이 노시인은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무에 바람이 일듯 젊음에서는 뜨거운 열풍이 일어야 한다. 살아 움직이는 운동 중에 「간다」는 것과 「온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나. 설사 목적이 없더라도 떠나라 떠나. 이른 새벽에 떠나든 깊은 밤 열차로 떠나든 떠나라』<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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