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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가셔브룸봉 등반 국내 첫 인터넷 생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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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가셔브룸봉 등반 국내 첫 인터넷 생중계

입력
1997.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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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8m 만년설 정상 네티즌과 함께 올랐다/아이네트­대학산악연맹 공동/위성 통신전화·노트북PC 이용/65일 등반과정·활동 직접 전송/한국 통신기술 ‘세계지붕’에 우뚝9일 새벽 3시, 히말라야 가셔브룸(GASHERBRUM) 제 1봉 정상 아래쪽에 위치한 「3호캠프」. 먼동이 밝아오면서 만년설에 덮인 봉우리는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려는 듯 위압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목표는 8시간 30분 정도 더 올라가야 하는 가셔브룸 제 1봉 정상. 얼어 붙은 손을 녹여가며 진공포장된 「알파비빔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한 원정대는 산소부족으로 생긴 띵한 두통을 참아가며 발길을 옮겼다. 국내 최초의 히말라야 등반 인터넷 생중계를 위해 짊어 진 통신장비가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그 순간 『살려줘!』 「히든 크레바스」의 갈라진 틈에 한쪽발을 헛디딘 대원의 외마디 비명이 눈보라 속으로 날카롭게 퍼져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히든 크레바스의 갈라진 틈이 허옇게 입을 드러냈다. 힘을 합쳐 그의 생명줄을 잡아 당기기 수분. 크레바스에서 대원의 몸이 겨우 빠져나오자 우리는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상오 11시30분. 『정상이다』 선두대원의 외침에 아래만 보고 걷던 대원들이 고개를 들고 일제히 환호했다. 50여m 앞에 가셔브룸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대원들은 정상정복의 감격을 전세계의 네티즌들에게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기 위해 디지털카메라를 연신 눌러댔다. 오만한 인간의 발길을 받아들여준 자연의 관대함을 생각하니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상은 히말라야 가셔브룸봉 정복순간을 묘사한 등반일지 중의 일부이다. 이 일지는 하산 후 적어 송고한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세계 네티즌들에게 중계된 내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히말라야 등반 인터넷 생중계라는 정보통신기술이 세계의 지붕위에 우뚝 선 것이다.

인터넷 전문업체인 아이네트(대표 허진호)와 한국대학산악연맹(단장 이인정)이 97가셔브룸원정대를 히말라야에 파견한 것은 지난달 4일. 대원들은 출발부터 8월11일 귀국때 까지 65일간의 등반과정과 활동상을 위성통신과 노트북PC를 이용해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하고 있다.

이상돈 대장이 이끄는 21명의 원정대가 도전한 곳은 히말라야의 8,000m급 14개 봉 가운데 「숨겨진 봉우리」로 불리는 가셔브룸 제1봉(해발 8,068m)과 제2봉(해발 8,035m). 원정대는 노트북PC에 연결한 휴대형 위성전화를 이용해 현지 사진과 등반일지를 전송하는 최첨단 인터넷 위성전송방식을 택했다. 원정대는 이를 위해 등반장비 외에 디지털 카메라 2대, 펜티엄급 노트북PC 2대, 위성전화 1대 등 전송장비와 발전기, 자동차용 축전지, 가동연료인 가솔린 등을 가져갔다.

원정대는 출국전 노트북PC, 위성전화 등 장비를 냉동고에 넣고 24시간 동안 테스트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그러나 사진과 일지를 인터넷에 전송해 주는 소프트웨어가 문제였다. 세계 유수의 소프트웨어를 동원했으나 장비와 맞지않아 결국 국산 소프트웨어 「이야기」를 택했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노트북PC의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다. 위성전화는 텐트가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눈보라 속에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다. 마침내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정상까지 들고 가야할 중계용 노트북PC가 고장나버린 것이다. 현지에서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서울 본부에 위성전화로 SOS를 요청했다. 이것 저것 일러주는 대로 오류를 가까스로 수정, 현장 생중계를 무사히 할 수 있었다.

한국대학산악연맹 이단장은 『산에서 느낀 감정과 정상정복의 성취감을 현장에서 그대로 전하는 것이 산악인들의 꿈』이라며 『이번 인터넷 생중계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등반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아이네트사의 이동수 부장은 『원정대가 악전고투 끝에 전송한 사진과 등반일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순간 히말라야 현장에 있는 착각을 일으켰다』며 기뻐했다.

◎가셔브룸봉

「히말라야 저쪽」이란 뜻의 카라코람 산맥이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지역을 가로지르면서 품고 있는 4개의 봉우리가 가셔브룸이다.

가셔브룸 제 1봉은 해발 8,068m로 거대한 산이지만 악천후와 다른 봉우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기때문에 「숨겨진 봉우리」로 불린다. 58년 미국의 클린치가 이끈 원정대가 처음 정상을 밟았다.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전쟁으로 한동안 입산이 금지되다가 75년 등반계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메스너가 북쪽 빙벽을 타고 등정하면서 입산이 재개됐다. 국내에서는 89년 대전산악회(대장 윤건중)가 최초로 등정했으며 이번에 한국대학산악연맹이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은 북서면의 새로운 코스를 개척해 정상에 올랐다.

해발 8,035m인 제2봉은 바위와 빙벽으로 이뤄져 난코스로 통한다. 제1봉과 연결되는 6,578m의 빙하지대가 있어 이곳을 통해 종주를 시도하기도 한다.

우리는 성균관대 산악팀이 91년 첫발을 디딘 이후 지금까지 5차례 정상정복에 성공했다.

◎가셔브룸 등반 일지

정상을 정복한 뒤 귀국길에 오른 97가셔브룸원정대가 인터넷 홈페이지(www.iWorld.net/Events/gasherbrum)에 연재하고 있는 등반일지 중 일부를 소개한다.

▲6월18일­카라코람 산맥의 관문 스카르두에 도착했다. 가셔브룸 봉까지 끝도없이 펼쳐진 사막지대를 가로지른다. 깎아지른 벼랑중턱에 난 외길을 아슬아슬하게 오르다보면 위에서는 바위조각들이 쉴새없이 떨어진다.

▲6월20일­가셔브룸 봉 아래를 흐르는 브랄두강에 도착했다. 무엇이든 삼켜버릴 듯한 회색빛 빙하물 위로 가느다란 로프에 두레박같이 생긴 바구니 「졸라브릿지」가 매달려 있다. 우리는 그것에 몸을 싣고 강을 건넜다.

▲6월23일­해발 4,100m지점에 텐트를 쳤다. 산사태로 다른 원정대의 짐꾼 수십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고산병증세가 나타나면서 호흡이 힘들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전신의 힘이 빠진다.

약간 과식을 한데다 소주까지 한잔 했더니 속이 울렁거렸다. 소화제 2알을 먹었으나 효과가 없어 결국 다 토하고 겨우 잠이 들었다. 고산지대에서 과식과 음주는 절대 금물이다.

▲6월28일­세계 등반계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를 만났다. 그의 제안으로 57년 6월 히말라야에서 등반도중 눈사태로 사망한 산악인 헤르만 불에 대한 추모식을 열었다.

각국에서 온 원정대원들이 모두 모여 헤르만 불이 눈더미에 묻힌 초골리사 봉우리를 향해 묵념하고 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7월9일­해발 7,300m부근에 3호캠프를 설치했다. 드디어 등정 첫날이 밝았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짐을 꾸리고 알파비빔밥을 먹었다. 크레바스에 빠질 위험이 있어 서로의 몸을 자일로 묶고 2조로 나눠 등반을 했다. 간식은 1인당 초코파이 2개, 진공포장된 인삼 1개, 사탕 몇개가 전부였다. 꼬박 8시간30분이 걸리는 대장정 끝에 상오 11시30분(한국시간 하오 3시55분) 드디어 우리는 정상을 밟았다.<최연진 기자 wolfpack@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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