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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기 돈 너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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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기 돈 너무 든다

입력
1997.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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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값·분유값서 헤어나면 두돌무렵부턴 조기교육 바람에 유치원비·학원비 등 만만찮고 게다가 턱없이 비싼 옷값에 장난감값·간식비…/“남들도 다하는데 혼자 안할수도 없고”「애들은 저절로 큰다」

천만의 말씀이다. 요즘 애들은 돈으로 큰다. 태어날 때부터 돈이다. 웬만큼 자라 분유값과 기저귀값에서 헤어날 만하면 장난감이다, 옷이다, 돈 들어 갈 데가 끊이지 않는다. 두돌 전후로는 「영재교육」 바람에 각종 학원비, 유아·유치원비 등 뭉텅이로 돈이 들어 간다. 어지간한 가정이면 적게 잡아도 소득의 3분의 1 이상이 육아비에 들어 가고 많이 쓰는 집은 가계지출의 3분의 2를 애키우는 데 쓴다.

많은 젊은 부모들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렇게 돈이 들어가니 취학후에는 얼마나 더 들까』하고 한숨을 쉬면서도 『남들도 다 그렇게 키우는데…』하는 생각으로 엄청난 육아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육아 비용이 과거보다 크게 늘어난 가장 큰 원인은 뭐니뭐니 해도 우리사회에 불어닥친 조기교육 바람. 보통 3세면 「영재학습」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놀이방에도 다닌다. 5세 정도면 대부분 유치원에 다니고 음악 미술 영어 수영 태권도 학원에 다닌다. 갓 돌지난 아이에게 놀이 및 지능발달 교육을 시킬 정도다.

조기교육은 종류가 다양하고 비용도 상당하다. 유치원비는 대개 12만∼15만원 정도이지만 각종 준비물 비용을 따지면 월 20만원은 들어간다. 그보다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집과 놀이방도 비슷한 돈이 들어간다. 각종 「영재학습」은 교재비와는 별도로 교사에게 월 12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학습지는 월 2만∼5만원 정도. 음악 미술 학원은 6만∼10만원, 영어학원은 10만∼15만원이 든다. 5세 아이에게 이것 저것 유행따라 시키다 보면 한달에 40만∼50만원이 금세 달아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94년 유치원생 1명의 연간 사교육비가 124만1,000원으로 85년 23만4,000원, 90년 51만8,000원에서 크게 늘었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의 최근 조사에서도 미취학 아동의 월 평균 사교육비가 20만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가계지출 항목에도 들어있지 않았던 취학전 아동의 교육비가 이제는 가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아동의류 장난감 보행기 등 유아용품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육아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옷 신발 양말 등 어린이 의류값이 어른 옷값을 뺨친지는 오래됐다. 유명브랜드 제품은 티셔츠가 4만원, 바지나 원피스는 16만∼20만원을 호가한다. 한켤레에 1만5,000원짜리 양말도 있다.

두 아이를 둔 집에서 성장과 두뇌발달, 위생에 좋다는 고급 우유를 먹이려면 한달에 20만원 넘는 돈이 들어간다. 군것질 비용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하루 1,000원은 들여야 TV광고에 나오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라도 사줄 수 있다. 외국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이나 고급제과점 과자와 빵을 간식으로 먹이려면 이보다 훨씬 더 드는 것은 물론이다. 미끄럼틀 자동차 인형 소꿉놀이기구 등 장난감도 애들이 보채면 한두개라도 안 사줄 수 없다. 장난감 유모차 젖병 이불 등도 만만찮은 값이다. 부모들은 아이 한명을 먹이고 입히는 데 어른보다 더 많은 돈이 든다고 입을 모은다.

육아비 급증 현상은 부모들의 허영과 경쟁심에서 비롯한 측면도 있다. YWCA 최수경 부장은 『아동용품이 턱없이 비싼 것은 고급화를 조장하는 유아용품 업자들과 내 아이에게만은 최고급을 주어야 한다는 부모의 삐뚤어진 의식이 원인』이라며 『각종 학원과 학습지 등 조기교육붐도 부모들의 지나친 경쟁심 탓』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부모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딴 아이들은 유치원과 각종 학원, 학습지 등 4, 5가지씩 하고 있는데 내 아이만 빠질 수는 없지 않느냐』며 『육아 및 교육비 부담이 크지만 어차피 필수비용이므로 어느 선 이하로 줄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배성규 기자>

◎소득 3분의 2 지출 어느 주부/“두 아이에 한달 100만원”/5살 딸아이 교육비만 40만원/“내년엔 부업이라도 해야죠”

5살짜리 딸과 3살배기 아들을 둔 박모(31·여)씨는 아이들 키우느라 가계가 휘청거릴 지경이다. 한달에 두 아이에게만 100만원 가량이 들어간다. 소득의 3분의 2에 달한다.

딸아이는 돈 잡아먹는 데는 「선수」다. 유치원비가 월 11만원, 영어 학습지 방문지도비가 교재비와 교사 수고비를 합쳐 월 17만원이다. 10여만원을 들여 한글과 놀이 공부도 시켰지만 부담이 너무 커 한달전에 그만두었다. 대신 아이가 미술에 관심을 보여 이달부터 6만원을 주고 동네 미술학원에 보내고 있다. 유치원 방학 기간에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구연동화 읽기 특강을 시킬 계획이다. 딸 교육비만 월 40만원 가깝다. 『부담은 되지만 내 아이만 안 시킬 수는 없잖아요? 주위에는 3, 4세때부터 5, 6가지 교육을 시키는 집들도 많거든요』

옷 신발 양말 등 의류비도 부담스럽다. 폴로나 베네통 같은 유명브랜드 제품은 바지나 원피스가 20만원을 호가해 입이 벌어질 정도다. 『첫아이 때는 예쁘게 키우고 싶은 생각에 유명 브랜드를 자주 사 입혔지만 둘째아이부터는 값싼 보세옷 판매점이나 할인점을 찾아요. 신발이나 양말은 남대문시장에서 사고요. 그래도 애들 한달 옷값이 30만원 가까이 들어요』 다행히 애들이 건강해 병원에는 자주 가지 않지만 예방접종이나 감기 때문에 한번도 그저 넘어가는 달이 없다. 1주일에 한번씩 햄버거나 치킨 피자 등 아이들 외식에도 월 4만∼5만원이 들어간다. 모든 게 돈이다.

박씨는 내년부터 부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150만원 정도인 남편 월급만으로는 늘어나는 육아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이다. 『전공을 살려 파트타임으로 보석감정사 일을 할 생각이에요. 애들은 크고 교육비는 점점 더 들어가니 저라도 나서서 벌어야지요. 애 키우려고 파출부 나간다는 말이 이해가 가요』

◎두 아들 알뜰육아 구향숙씨/“돈 많이 안들어도 키울 수 있어요”/광목기저귀 물려서 사용/옷·신발은 친척한테 얻고 장난감은 꼭 필요한 것만/초등학교 다니는 큰아들 바둑강습료·학습지값 등 4만원이 교육비 전부

서울 마포구 현석동에 사는 구향숙(33)씨는 보기 드물게 알뜰 육아를 해 온 주부이다. 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어 힘들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에게는 35개월짜리 성준이와 초등학교 1년생인 병준이 두 아들이 있다. 병준이를 키울 때는 광목기저귀를 썼다. 남들은 1회용 기저귀를 쓸 때였지만 구씨는 광목기저귀를 고집했다. 병준이가 쓰던 광목기저귀를 잘 보관했다가 성준이가 태어나자 다시 썼다.

분유나 이유식값이 많이 든다는 얘기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이들 돌무렵부터 고깃국에 밥을 말아 먹이고 과일즙을 만들어 먹였다. 옷값도 거의 들지 않았다. 수의사인 남편 안근승(37)씨는 8형제중 7번째. 덕분에 조카들의 옷과 장난감 신발 그림책 등을 얻어 왔다. 아이들이 너무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외출용 옷은 따로 마련했다. 얻어 온 신발 가운데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것만도 10켤레가 넘는다.

20년된 재봉틀도 알뜰 육아에 큰몫을 했다. 얻어 온 옷이 맞지 않으면 줄이거나 늘려 입히면 감쪽같다. 장난감도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사지 않는다. 병 뚜껑 등을 이용, 아이들이 스스로 장난감을 개발하도록 유도하고 장난감을 사 달라고 떼를 쓰지 못하도록 한다. 큰 아이에게는 용돈기록장을 쓰도록 했다. 용돈을 모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난감을 스스로 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 교육은 거의가 엄마 몫이다. 단지 병준이가 다소 산만한 편이어서 인근 불교방송국 문화센터에서 바둑을 배우도록 했다. 3개월에 6만원이니 큰 부담은 아니다. 구씨는 틈틈이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함께 놀아주는 정도면 충분한 생활교육이 된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병준이와 바둑을 두는 것도 교육과 친밀도를 높이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주위사람들이 오히려 얄밉게 구씨를 걱정해 주는 척한다. 피아노 서예 영어 컴퓨터는 왜 안시키느냐고 묻고 수십만원짜리 영어교육용 비디오테이프를 사거나 외국인 영어과외를 시키면서 동참을 제의할 때면 갈등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 넘어갈 수는 없다. 우선 남들 하듯 따라 하다가는 빠듯한 수입으로 살림이 어렵다. 또 아이들 적성도 모르면서 무리한 조기교육을 강요하다가는 아이들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구씨는 병준이 학교급식비 2만5,000원, 학습지값 2만2,000원, 바둑료 2만원정도가 그나마 굵직한 비용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알뜰 살뜰 살아 온 덕분에 결혼 8년째인 지난해 아무런 도움없이 34평짜리 아파트를 장만했다. 구씨의 은근한 자랑거리다.<조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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