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남자다움’에서 벗어날때 더 남자답지 않을까(여자가 본 남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남자다움’에서 벗어날때 더 남자답지 않을까(여자가 본 남자)

입력
1997.07.12 00:00
0 0

『남자라면 스포츠를 봐야지』하는 아빠, 『남자는 딱 두번 우는 거야, 태어날 때와 어머니 돌아가셨을때』 하는 남자, 암으로 진단받고도 가족을 위해 감추는 「아버지」, 「영웅호색」이라며 아내와 술집아가씨를 구별할 줄 아는 남자, 술집에서 군대시절의 치기로움을 떠들때에는 시간가는줄 모르는 남자.회색 대도시 길모퉁이에서, 직장에서 마주치는 일상의 남자들은 노상 후줄근하다. 그러나 「남자」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갑자기 그들은 독특한 표정으로 살아난다. 마치 전설같은 선조의 무용담에 취한 어린아이같이, 혹은 터미네이터가 용광로안으로 사라지는 그 가슴저리는 영화에 감동한 학생같다고 할까.

이미 그들은 남자다움을 위하여 고통과 땀을 바쳐 드디어 신체적 연령으로는 성인남자가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 끊임없이 모여서 감동하고 자신의 남자다움을 확인하여야 하는 것일까.

「남자답지 못한」 「남자가 되어야지」 등으로 강조되는 남성성은 끊임없이 강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남성성이란 것이 그처럼 자명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의학적으로 볼때 수정된 태아가 Y염색체를 가졌다고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내버려두면 여자가 될 매번의 운명적인 순간에 대항하지 않으면 남자로 태어날 수 없다. 심리적으로도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 여자의 가슴에서 잠드는 남자아이는 여자와는 달리 삶의 대부분을 여성으로부터의 분리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어 남성다움을 가르침받아야 하고 이 사회가 규정하는 남성으로 만들어져야만 된다.

자연스런 감정을 억제해야만 하고 준비도 안된 시기에 독립적으로 행동하여야 하고 속에는 아우성치는 아이가 들어있어도 강한 척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남자다움」이라는 갑옷으로 무장을 하나 그 갑옷은 발뒤꿈치까지 덮지는 못한다. 그 틈새로 스며나오는 치기로움은 여자를 경멸하는 것으로 일중독으로 패권주의로 바람둥이로 모습을 달리하여 나타난다. 도리어 갑옷을 입지 않은 남자가 더 남자다운 것은 아닐까. 회색도시속에서 자연의 남자가 그립다.<최보문 의사>

최보문씨는 52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 카톨릭의대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나와 현재 카톨릭의대 정신과 부교수와 성가병원 정신과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사는 그는 요즘 중3, 중1된 두 아들의 「남자다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