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극계의 「노 개런티(무료출연)」선언을 지켜보면서 우리 공연예술의 실상을 확인할 기회를 가졌다. 창작뮤지컬 「명성황후」(에이콤)의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제작발표회에서 주역배우인 성악가 김원정 이태원씨와 코러스, 스태프 등 수십명의 제작진 전원은 『출연료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기 안성의 야외공연장에 올려질 「오이디푸스 1, 2부」(극단 무천)도 임꺽정의 탤런트 정홍채씨를 비롯한 출연진 모두 무료출연 의사를 굳혔다. 두 작품은 8월의 대형무대. 이유는 제작비 부족이다. 그러면서도 두 작품의 출연진 표정에서는 한결같이 자긍심이 엿보였다.안성 죽산에 문화촌 설립을 꿈꾸며 배우들과 먹고 자면서 연습중인 김아라 무천대표는 『순수연극은 상업연극과 엄밀히 구분된다. 뜻깊은 후원이나 개인 재산없이 한국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돈이 아닌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명성황후」가 기업으로부터 받으려한 15억원의 제작비 후원이 불황으로 불가능해지자 출연진은 미련없이 출연비를 포기하고 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에 서는 영예를 택했다. 이들에겐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결단, 끈끈한 공동체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명예를 내세운 무료출연의 이면에는 우리 연극계의 척박한 토양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몇년새 대형뮤지컬과 기업식 극단이 크게 붐을 타면서 연극도 문화상품으로서 세계화에 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대표의 말대로 가장 자본의 논리에 충실해야 할 뮤지컬마저 실제로는 관객의 인식과 문화인프라의 발전이라는 내실의 구축없이 외형만 키워왔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우리 연극계의 현실은 두 공연의 경우처럼 세계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 고부가가치를 추구하는 작품과 순수연극으로 존재하려는 극단의 제작방식이 공존하고 있다. 연극계와 타분야의 발전속도에 차이가 나면서 가난에 멍든 예술가들은 흥행과 작품성을 따로 따로 계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예술성이 자랑거리가 되고 예술가에 대한 존경이 절로 우러나는 그런 현장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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