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관료 등 포함땐 파란/대남공작·친북인사 등 진술한듯/학술교류 등 순수만남 구별돼야황장엽씨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황장엽 리스트」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황씨가 건네준 황장엽 리스트는 없어도 새롭게 「황장엽 파일」이 나온 것이다.
국가안전기획부는 이날 황씨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황씨가 이른바 남한내 친북 인사 및 조직에 대한 별도의 「리스트」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황씨 망명사건 초기부터 「황풍」의 핵으로 항간에 나돌던 「황장엽 리스트」의 존재를 공식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안기부는 『(황씨가) 오랜 세월 동안 북한 고위층의 지위에 있으면서 득문한 대남 공작 관련 사항과 평양 및 해외 체류시 접촉했던 국내외 인물들에 대해 진술했다』며 『대공수사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추적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대공혐의가 밝혀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소정의 법적 절차를 적용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안기부는 황씨가 문건으로 된 확실한 리스트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황씨의 머릿속에는 그 같은 리스트에 버금가는 파일이 있으며 당연히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초기단계에서 소멸된 것처럼 보였던 황풍이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는 또 대선정국의 본격화를 앞둔 정치권이 계속 황풍의 영향권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해 주목된다.
황씨를 알거나 황씨와 접촉했던 국내 인사는 한두명이 아니다. 황씨는 당 국제담당비서, 주체사상의 전도사로서 비교적 해외여행이 잦았기 때문에 외부사정에 밝았고 국제학술토론회 등을 통해 남측인사와 만날 기회도 적지 않았다. 더욱이 94년부터는 자신이 운영하는 국제주체재단을 여광무역연합총회사로 위장, 남북한 무역중개와 이산가족 상봉, 기부금 모집 사업 등을 전개했으며 이런 와중에서 사업가·학자·종교인 등 남한의 각계 인사들이 황씨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다. 물론 이들중 대부분은 순수한 의미의 남북 교류에 나섰던 사람들이다.
특히 황씨의 망명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 수도 상당하다.
여기에 비서국 회의나 사적 대화를 통해 황씨가 전해 들은 정보까지 감안하면 황씨가 알고 있는 「남한인사」는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비서실 회의록이 김정일집무실 책상 위에 올라간다는 소문이 나돈 것도 북한의 대남 정보력과 공작활동이 프로급이라는 이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가령 노동당의 대남기구인 사회문화부의 경우는 대남 교란 활동 등 특별한 성과를 거두기보다는 보통 20년 이상씩 암약하며 지하망을 건설하기 때문에 뿌리가 깊고 활동범위가 넓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문제는 황씨의 머릿속에 있는 「대남 인사 정보파일」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일이다. 황씨는 기자회견에서 알고 있는 남측 인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안기부에) 모든 것을 진술했다』고만 말했다. 이 진술속에 항간에서 떠돌던 소문처럼 정치인, 정부 고위관료 등 여론주도층 인사들이 포함됐을 경우 사회는 일대 격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수사당국이 일단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라고 밝힌 이상 어떤 식으로든 그 결과를 공표하고 잡음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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